Januar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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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19 2019-01-03T08:36:25+02:00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오고 있다!

집 음악실에서 샄흐니니 형제들

 

2007년 1년만에 모든 것이 변했다.

샄흐니니 가족은 나사렛에 사는 전형적인 아랍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나사렛에서 수세대를 살아왔다.

이들은 동네의 다른 모든 아랍 기독교인들처럼 성탄절과 부활절을 기념했다. 아버지 비샤라는 이발사고 어머니 사라는 미용사였다. 부부는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아파트에서 세 명의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아들을 키워냈다. 요세프와 미리암이 예슈아를 기른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였다.

사는 건 문제 없었다. 그러다가 2007년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비샤라는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 아랍 문화권에서 친구 관계는 아주 끈끈한 것이기에, 상처가 깊었다.

아직 상황을 풀어나가고 있던 중에 비샤라는 형수가 한 달 밖에 못 산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암 때문이었다. 비샤라에겐 암흑기였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비샤라의 아내 사라는 넷째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비샤라와 사라 샄흐니니 부부, 그리고 네 아들이 예루살렘의 벤예후다 거리에서 셀카를 위해 포즈를 취했다.

하이파에 있는 목사님이 비샤라와 친구가 되어 그에게 성경과 예슈아께서 용서를 가르치신 것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아랍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날 때부터 신분증에 찍힌 문화적 정체성에 불과했기 때문에 비샤라는 그런 가르침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픔에도 불구하고 비샤라는 자신의 친구를 용서하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참된 용서를 받게 됐다.

중생의 체험을 통한 새로운 자유에 용기를 얻은 비샤라는 목사님에게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는 다른 문제, 즉 형수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목사님과 비샤라 가족 (아직 청소년기에 이르지 않은 세 아들 포함)은 함께 사흘 동안 금식하기로 했다. 기도 응답으로 형수는 병원에서 완전히 치유된 상태로 걸어나왔으며 지금까지도 건강히 지내고 있다.

얼마 있다가 사라가 진통을 겪게 됐다. 아들이 태어났는데, 아이의 탯줄에 매듭이 지어있었다. 그래서 산소와 음식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완전히 차단했던 것이다. 그 매듭이 얼마나 됐는지 모르는 간호사들은 허둥지둥하며 즉시 아기를 검사해보았다. 아기는 완전히, 온전히 건강한 상태였다.

비샤라, 사라와 세 아들 아딥, 엘리야, 야지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과 그렇게 능력 있고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으로 성경을 파고 들었다. 식구들은 단체로 이 하나님께 삶을 온전히 바치게 됐다.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다?

이 사건들은 동네에 파장을 일으키게 됐다. 나사렛에서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사실상 무슬림이 아니라는 의미다. 금식, 용서, 기적 이런 것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들의 아랍 기독교인 이웃들은 이제 거듭난 샄흐니니 가족이 전혀 다른 종교에 속했다고 여겼다. 예슈아께서 성장하신 도시에서 새로이 그분을 따르는 이들이 이제 괄시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샄흐니니 가족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이 체험한 것이 실제였기에 그들은 들을 귀 있는 모두에게 그것을 전했다.

샄흐니니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었다. 이들은 시간만 있으면 그때 그때 연습하고 있는 악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전적으로 투자했다. 물론 그리고서 합주를 했다. 교회에 더 소속되고 싶은 마음으로 비샤라는 중동의 현악기인 우드를 예배 팀에서 연주하겠다고 제안했다. 세 아들들이 더 자라면서, 이들의 영성과 음악 실력의 탁월함은 모두에게 드러났고 이들도 예배 인도를 시작했다.

어느 날, 목사님과 친한 몇몇 유대인 신자들이 이 아랍 교회를 찾아왔고 샄흐니니는 다시 한번 세계관의 충돌에 부딪히게 됐다. 명목상 기독교인인 아랍인들 가운데 예슈아께서 유대인이셨다는 사실은 흔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샄흐니니 가족은 성경 공부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대체 언제부터 유대인들이 예슈아를 믿었다는 것인가?!

서로 만난 아랍인과 유대인 신자들

이스라엘에서 나 (샤니)는 종종 아랍 신자들과 함께 예배하며 자랐고, 내 기억력이 닿는 한 우리 부모님은 언제나 아랍 교회를 후원하셨다. 그런데 10여년 전쯤엔 이스라엘의 신자들이 대규모로 거듭난 유대-아랍 신자들 간의 연합을 위해 조직적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분명 이 땅 전역에서 적은 수의 신자들 간에 관계의 연결이 맺어지고 있었다. 공적 집회나 컨퍼런스에서 함께 만나면, 세속 스태프들은 항상 흥미를 보였다. 우리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이 외부자들에겐 넋을 빼놓는 일이었고 항상 의문을 갖게 했다.

관계가 발전하면서 이스라엘 전역에서 함께 하는 집회들이 생겨났다. 히브리어, 영어, 아랍어로 진행하는 예배 시간은 따뜻하면서 고무적이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아랍인들이 그들을 구세주의 민족으로 받아들일 때보다 예슈아의 능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간증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배 때 함께 찬양하는 것 이상을 원했다. 우리는 이스라엘 워십 이니셔티브라는 것을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를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 이스라엘에 주신 가장 의미 있고 강력한 부르심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숙한 연주자들과 작곡가들을 계발하는 것이 이 부르심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아랍과 유대의 경배 사운드가 잘 녹아들기를 원했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할만큼 최고 수준의 음악 실력을 가진 아랍 음악인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찾았어!

“찾았어! 나사렛에 있어!” 우리는 동료 이스라엘 연주자가 이 말을 했던 그 날을 기억한다. 그는 하이파의 교회에서 예배 인도를 하고 있던 세 아랍 형제들을 만났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젊었지만, 싹을 틔우고 있는 그들의 달란트는 눈에 보였고 탁월한 음악을 향한 그들의 헌신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곡 녹음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예루살렘의 우리 사역 센터에 처음으로 와서 아티스트 펠로우쉽 스튜디오에 들어왔을 때, 샄흐니니 형제들은 눈이 번쩍 띄였다.  그들이 집에서 모든 악기를 보관하는 방은 2평 가량이었다. 거기에 그들은 다양한 전통 악기부터 기타, 바이올린, 드럼셋, 피아노까지 15~20가지 악기를 가득 채워놓고 살았다.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음악을 만들고 녹음하기 위한 목적의 예루살렘의 우리 스튜디오 센터는 56평 정도가 되는 것이다.

아티스트 펠로우쉽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샤니와 샄흐니니 형제들.

나사렛은 두 시간 가량 떨어져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스튜디오에서 자도록 했다. 당시 우리는 그들에 대해 잘 몰랐지만, 며칠을 집중적으로 함께 작업하며 지내다 보면 사람에 대해 많은 걸 배우게 된다. 그들은 완전히 신사들이었다. 세 남자가 한 방을 쓸 때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수준보다 깨끗하게 관리가 됐다. 그들은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우리가 해주는 모든 작은 일에 대해 감사했다. 몇 달 전 그들의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우리 아들들을 위해 이 어머니와 앉아 부모 역할에 대한 팁을 구할 기회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후 1~2년 동안 나는 이 형제들이 다양한 지역 컨퍼런스 및 예배 집회에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연주 스타일은 각 유대인 교회들의 서구식 사운드에 독특한 토착미를 가미해주었다. 그들은 또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투어를 하는 미케뎀이라는 이스라엘 밴드와 함께 연주하도록 초대를 받았다. 미케뎀은 모든 종류의 토착 리듬들과 사운드를 탐구하며, 그러한 사운드에 히브리어로 시편을 노래했다.

<Sapphire Skies>의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는 사막 현장에서 샤니와 샄흐니니 형제들.

이 형제들은 또 내가 처음으로 영어로 써서 발매한 곡 <Sapphire Skies>을 연주하기도 했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 위해 사막으로 갔을 때 우리는 기나긴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아랍어로 된 곡들로 중동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을 나눴다. 자신들의 음악이 이라크,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이슬람 국가들, 그리고 물론 이스라엘의 주권 하에 살고 있는 수백 만의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갈릴리에 밝혀진 밝은 빛

오늘날 나사렛은 완전히 아랍 지역이지만, 유대인들은 그곳의 사업체와 식당들을 자주 찾는다. 하마스를 동정하는 자들은 이곳을 찾아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려 했지만, 나사렛 시장이 그들을 쫓아냈다. 그래도 2000년에 시작된 제2차 인티파다 전 나사렛은 80%의 아랍 기독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늘날은 70%가 무슬림이며 단 30%만 기독교인이다. 명목 뿐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국적의 아랍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문화의 고압적 성격에 고통 받고 있다.

이슬람이 아랍 국가들에서 지배적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아랍어 노래는 아주 희귀하다. 지난 해 우리는 이 형제들이 <오 거룩한 밤> 녹음을 도와줬다. 크리스마스 음악조차 아랍어로는 희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형제들이 지역 아랍 교회와 여러 유대인 단체들을 기쁨으로 섬기긴 했지만, 그들 안에는 자신들만의 사운드와 부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그들의 목소리를 내야할 때였다.

샄흐니니 형제들은 수십 곡을 수집했다. 일부는 자작곡이고 일부는 아랍 찬송가인데,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려면 2만 달러의 비용이 들 것이다. 음악은 가장 다가가기 어려운 지역들에 들어갈 수 있는 도구임이 증명되었다. 이 형제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곳은 복음을 증거하는 이들에게 흔히 가장 어려운 지역들이다.

그러나 여기 민주주의 국가 이스라엘에서, 이 아랍 가족은 주변 이슬람 국가의 수백만 인구에게 다가갈 수 있다.

우리가 나사렛이 다시 한번 중동에 용서와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빛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에 함께해주시길 바란다.

우리는 예언 성취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사야 9:1~2

나사렛의 그림 같은 길가에서 아딥, 엘리야, 야지드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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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4부: -예루살렘 정통 유대인들과 엘리에제르 벤예후다의 대결

예루살렘에서 1876년에 찍은 일곱 명의 초정통파 아쉬케나지 (유럽 출신) 남성들 사진. 엘리에제르 벤예후다와 신부 드보라가 1881년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래 이 남자들은 아마도 고대 히브리어가 장래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언어로 부활되도록 수고한 벤예후다에게 맞서 싸운 종교적 폭도들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시대를 지나오면서 히브리 성경은 고유하고 아름다운 서정적 언어로 보존되어 왔다. 그러나 19세기 유대인들이 현대라는 환경 가운데 선지자들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려는 몸부림은 서투르고 어색했다.

히브리 성경에는 총 6,259개의 고유 단어가 들어 있다. (이해를 돕자면, 오늘날 영어에는 17만 개가 넘는 단어들이 활용되고 있는 반면 히브리어는 8만 개 가량이다.) 그 때문에 아무도 히브리어를 일상 언어로 쓰려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 아무도에는 엘리에제르 벤예후다가 포함되지 않는다. 그와 그의 가족은 집에서 “일상 히브리어”를 썼을 뿐 아니라,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가르쳤다. 그는 즉시 현대판 언어로서의 히브리어에 새로운 단어가 수천 개 더 필요할 것을 깨달았다.

비참하도록 가난했지만 벤예후다의 개인적 모범과 열정, 가르치는 기술은 이미 다른 이들에게 엄청난 인상을 주었고 그들 가운데 다수가 교사가 되기까지 이어졌다.

젊은 유대인 개척자들이 히브리어를 읽고 쓰고 말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전세계 어느 곳에도 히브리어 사전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1880년대에는 우체국, 아이스크림, 젤리, 오믈렛, 수건, 자전거, 카메라, 전구, 줄넘기, 짐수레 등을 뜻하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다.

이 언어를 개척하는 사람들이 너무 적어, 모두를 말그대로 “같은 선상”에 두는 것이 엄중히 필요했다. 새로운 어휘들이 현대 히브리어에 취가되면 모두 동일한 출처에서 나와야 했다. 벤예후다는 자신의 세대 어느 누구도 그러한 프로젝트를 갖고 씨름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조차도 히브리어 사전은 50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일부 고대 문서에서 발견한 혹은 히브리어를 쓰는 최초의 아이 벤 찌온의 입에서 나오는, 혹은 자신이 창조적으로 생각한 모든 새로운 단어를 작은 종이조각들에 적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는 모든 단어의 어근을 성경적 출처에 기초하도록 하며 자신의 사전에 외래어는 넣지 않기로 결심했다. 곧 그에겐 종이조각들로 가득한 상자들이 여럿 생겼다. 종이조각마다 단어를 하나씩 적었는데, 엘리에제르에겐 그것들이 금쪽보다 귀했다. 그러나 식탁 위엔 먹을 음식이 없었다.

히브리어 주간 신문 <더 디어> 작업 중인 엘리에제르 벤예후다.

러시아에서 재정 지원을 구하다

아내의 권유를 받은 엘리에제르는 러시아의 잘 나가는 기업가인 드보라 부모님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주요 수입원이 주간 신문 <더 디어The Deer>구독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는 장인어른이 마련한 만남들을 통해 구독자를 늘리기를 바랐다. 솔로몬 조나스는 뭔가 비범한 자신의 사위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코셔 음식만 먹는 정통 유대인으로서 엘리에제르가 터키 복장을 한 것을 보고 놀랐다!

벤예후다가 영감을 주는 연설가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자신만의 주문으로 시작했다. “날은 짧고 할 일은 많다!” 이러한 모토를 사무실에, 일부러 자기 눈앞에 써 두었다.

러시아 유대인들에게 전한 그의 메시지는 긴급하면서도 열광을 불러모았다. “우리 유대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기적적인 민족의 회복, ‘메시아의 오심’에 모든 믿음을 걸어왔다. 그 기대를 계속 따라가는 사람들은 영원히 길을 잃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돕지 않는 자를 돕지 않으신다. 당신의 동산을 가꾸도록 아담을 지으셨다.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도와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행동하되 당장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파리로 갔다가 사람들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자신을 반겨주는지 보고 깜짝 놀랐다.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꿈 꾸는 자가 아니라 민족주의 운동의 목소리로 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신문으로 인한 혼돈

그는 신문 편집장 역할을 대신해준 자신의 친구 마이클 파인즈가 극도로 논란을 일으킨, 친종교적 기사를 썼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로 7년마다 한 번씩 1년 내내 농사로부터 땅을 쉬게해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정착민들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농민들의 정착촌들은 2천년 동안 황폐했던 불모의 토양에서 첫 수확을 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에제르는 땅을 1년 동안 쉬게 한다는 것이 새로운 농민들에게는 재앙이 될 것임을 알았다.

엘리에제르는 즉시 파인즈의 기사를 부정하는 기사를 써서 농민들에게 이 초기 단계에 쉼없이 꾸준히 농사를 지으라고 했다. 당시 엘리에제르 부부는 모두 초정통파 유대교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안식년 “쉬미타”를 지키는 것보다 당신의 백성이 생존하는 것을 더 중요시하시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엘리에제르와 파인즈의 우정의 종착점이었다. 그에겐 손에 꼽을 만한 좋은 친구 중 하나였지만 말이다.

종교인들의 검은 초 저주

아쉬케나지 (유럽 출신) 정통파 유대인들에게 엘리에제르의 기사는 최후의 결정타였다. 그들은 이단 중의 이단, 희대의 기만자라 부르며 그의 신문 <더 디어>가 인쇄되는 건물을 폐쇄하려 했다. 다시 한번 그들은 회당에서 검은 초를 켜는 의식을 거행했고 파문 선언서를 읽었다. 랍비들은 이스라엘 땅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구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단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 디어> 머릿기사와 그 신문의 모습.

벤예후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드보라에게 말한 것이다. “초정통파는 나와 관계를 끊었고 나도 그들과 절교할 것이다. 그들은 결코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우린 항상 외부자일 것이다.” 7년 동안 엘리에제르 부부는 랍비들의 율법을 세세하게 모두 지켰고, 그들의 준수가 성지의 유대인들을 하나로 엮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겉옷과 빨간 페즈 모자를 벗고 바닥에 집어던진 뒤 짓밟았으며, 턱수염을 잘라버렸다. (염소 수염으로 만들었다.)

예루살렘의 세파라디 유대인들 (아랍 국가에서 온 이들)은 전혀 그런 광신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엘리에제르는 여전히 그들에게 신문을 팔고 같은 인쇄소를 이용하여 신문팔이를 이어갈 수 있었다.

정통파 유대인도 노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신문을 가지고 엘리에제르는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을 맹공격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진행 상황을 늦춘 것에 대해 그들 탓을 했다. 그는 그들의 아픈 곳을 쳤다. 랍비들이 받은 거액의 기부금에 대해 밝힐 것을 요구했다. 그는 랍비들이 스스로 얼마나 해먹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측근이 얼마나 받고 있었는지를 보고자 장부를 원했다.

그는 랍비들에게 땅을 사고 예쉬바 학생들에게 줄 것을 권했다. 정착하고 새 집을 지으며, 가족들을 위해 작은 농장을 세우기 위해 말이다. 실업 수당을 받아사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정통파 측의 응답은 또 한 번의 금지였다. 벤예후다의 집은 이제 가선 안 될 곳이었다. 유대교인은 그의 사무실이나 집에 발을 들였다가는 심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야포 마을과 정착촌에 있는 이들은 완전히 벤예후다의 편에 있었다. 그들은 그 해에 심지 않으면 굶어죽으리란 것을 알았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개인적 친구들 중에서는 알리앙스 학교 디렉터인 니심 베하르만 공개적으로 그를 옹호했다.

드보라가 히브리어를 가르치다가 금지 당하다

드보라는 친구가 없는 상태였다. 그녀의 지인들은 모두 예루살렘의 장로들을 거역하기를 겁냈기 때문이다. 그때 드보라에게 독특한 기회가 주어졌다. 니심 베하르의 누나가 에드먼드 로스차일드 남작의 후원 하에 알리앙스 여학교를 열었다. 드보라는 히브리어를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받았고, 그 덕에 엘리에제르는 자신의 신문과 사전에 모든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연기는 오래 가지 못했고, 정통파는 드보라가 그 곳에서 계속 가르친다면 알리앙스 학교를 금지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그녀는 떠나도록 강요 받았다.

정통파의 분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엘리에제르는 젊은 우호적 세파라디 랍비에게 경고를 받았는데, 그를 죽이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엘리에제르는 일상을 바꾸기를 거부했다. 다음 날 그와 아들 벤찌온은 당나귀를 타고 올드 시티로 들어갔고, 막대기와 돌멩이를 든 청소년 폭도들이 둘을 향해 왔다.

몇몇 가게 주인들, 그리고 경찰들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맞아 죽었을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젊은 정착민 기갑 부대가 해안 평야로부터 말을 타고 벤예후다 부자를 지키러 왔다. 그걸로 죽이려는 시도는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놀라운 재정적 돌파

니심 베하르는 로스차일드 남작에게 마침내 편지를 보내, 벤예후다 가족에 대한 쉴새없고 끝없는 박해를 묘사했다. 그리고 불가사의하게도! 로스차일드가 아니면 누가 그를 구할 수 있겠는가! 로스차일드는 히브리어가 다시금 널리 쓰이는 언어가 될 것이라고 믿지 않았음에도 벤예후다의 일을 존경했다.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벤예후다 씨, 두려워 마십시오. 저는 개인적으로 그대의 싸움을 영적으로, 돈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대는 그대의 문학 작업에 대해 제 대리인으로부터 정규 급여를 받을 것입니다.”

아주 잠시 동안, 인생은 더 녹록했다. <더 디어>는 잘 나갔다. 규모와 의미 면에서 커진 것이다. 유럽 최고의 신문 스타일을 지닌 최초의 히브리어 신문으로서 뉴스 저널 형식으로 나왔다. 드보라는 신생아를 비롯해 아이들을 돌봐줄 보모까지 있었다. 첫 아이는 9살이었고 이제 동생들에게 아름다운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일을 돕고 있었다. 알리앙스 학교에서는 히브리어 교사들이 지리학, 역사, 수학을 모두 히브리어로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드보라가 기침을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여

엘리에제르는 신문, 사전, 그리고 가정 생활로 완전히 질주하고 있었는데, 드보라의 폐렴이 심해졌다. 엘리에제르는 아내의 상황이 이제 치명적임을 알았다. 다섯 아이가 있었기에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비할 수 있게 해야했다.

절박해진 그는 친어머니 페이가에게 러시아에서 와서 가족들을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 감자 포대들처럼 밀입국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다섯 자녀들에게 말 한 마디도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를 못했기 때문이다!

드보라도 친정 어머니에게 와달라고 했는데, 엘리에제르는 장모님도 마찬가지로 입국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도착을 했을 때 드보라는 이미 입원한 상태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장모는 딸을 퇴원시키고 싶어했다. 빠르게 예루살렘을 뒤져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편안한 집을 물색했고, 그 곳을 임대해 온 가족이 이사했다. 드보라는 여름내 정원에서 아이들과 어머니, 시어머니와 햇빛을 쬐이며 지냈다. 저녁에는 서재에서 남편과 앉아 잠자리에 들 때까지 독서를 했다. 상태가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드보라는 자신이 얼마 못 살 것을 알았다. 그것은 그녀가 10년 동안 보지 못한 누이 폴라에게 1891년 9월 10일 보낸 편지에 드러났다.

드보라의 마지막 편지

편지를 보면 폴라에게 자기를 이어 엘리에제르와 결혼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녀는 남편과 보낸 순간순간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썼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때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엘리에제르는 사명이 있는 사람인데 다섯 자녀가 있으니” 뒤를 봐주면 좋겠다고 폴라에게 썼다. 그러나 충분한 값어치는 있을 것이라고, “역사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15일 후, 드보라는 기침하다가 피를 토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엘리에제르는 바들바들 떠는 그녀의 몸을 덮어줄 이불을 더 찾으러 뛰어다녔다. 엘리에제르가 자리를 비웠을 때, 드보라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말을 했다. “어머니, 약속해 주세요! 지금 저에게 약속해 주세요. 폴라를 아내로…약속해 주세요. 아니면 저는 세상의 죽은 여자들 중에 가장 비참할 거에요.”

시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래, 사랑하는 드보라. 그 아이가 원한다면 난 허락하마. 네가 원하는 바라면 약속한다.”

그리고 드보라는 떠났다.

엘리에제르는 첫째와 둘째에게 말했다. “우리가 우는 것이 맞아. 그렇지만 미안해 하진 말아라. 어머니는 할 일을 했고, 맡은 바를 이뤄냈어. 우리도 우리가 맡은 일을 해야 한다…어머니는 2천년 만에 처음으로 히브리어를 쓴 어머니였어. 앞으로 태어날 모든 히브리어를 쓰는 아이들의 어머니인 거야.”

올리브산 꼭대기에 묻힌 드보라 벤예후다의 비석. 삽입 사진: 벤예후다의 첫 아내의 희귀 사진

여기엔 묻힐 수 없다!

아쉬케나지 장의사들은 드보라의 시신을 들것에 눕히고 올리브산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엘리에제르와 단 두명 뿐이었다. 장자 벤찌온과 친구 니심 베하르였다.

공동묘지를 향해 걷는데 낯선 사람이 끼어들었다. 그는 검은 겉옷을 걸치고 챙이 넓은 검은 모자를 쓴, 키 크고 마른 사람이었다. 이 낯선 사람은 예레미야 애가서를 노래하고 있었다. 엘리에제르와 아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부드럽고 깊어서 가히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올리브 산에 절반까지 올라갔을 때 정통파 유대교인 무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운반자들을 가로막고 벤예후다에게 주먹을 흔들었다. 벤예후다에게 랍비들의 금지령이 내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내는 올리브 산에 매장할 수 없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랍비들은 초대 받지 못했다

분노한 벤예후다는 홀로 올드 시티로 뛰어 돌아갔고, 재빨리 세파라디 장의사들과 돌아갔다. 아홉살짜리 소년이 어머니의 시신 곁에 서서 어디에 매장을 해야 하나 골똘해하는 와중에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그 시간 내내 낯선 사람은 애가를 노래하고 있었다.

드디어 아쉬케나지 폭도들이 누그러져서 산 꼭대기에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벤예후다는 묘지에 랍비도 데려오지 않고 기도서도 가져오지 않았다. 두 어른과 한 아이가 조용히 서있는 가운데 검은 옷의 그 남자는 잠언 31장을 노래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예루살렘으로 걸어 돌아가다가, 엘리에제르는 그 낯선 이에게 집에서 차 한 잔을 하자고 했다. 그는 가버렸다. 그의 정체는 지금까지도 벤예후다 가족 아무도 모르는 상태다.

벤예후다의 헌사

<더 디어> 구독자들은 벤예후다가 아내 드보라에 대해 무어라 쓸지 잠자코 기다리지 못했다. 그러나 7일 간의 애곡 (쉬바)이 끝난 후 나온 신문은 그녀의 소천이나 정통파 유대인들과 매장을 두고 벌어진 다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외려 엘리에제르는 예레미야 2장 2절 말씀을 굵은 박스 안에 넣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애곡 기간 후 장모는 가방을 싸서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드보라의 유언이 누이와 결혼하라는 것이었다고 엘리에제르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채 떠났다.

엘리에제르의 모친 페이가는 남았다. 그러나 히브리어를 할 줄 몰라 손주들에게 말을 걸 순 없었다.

두 달 내에 끔찍한 전염성 독감이 예루살렘에 닥쳤고 다섯 아이 중 셋이 죽었다. 그들은 올리브산 어머니 옆에 묻혔다. 엘리에제르는 기침을 시작했고 다시 피를 토했다. 정통 유대교계는 엘리에제르의 건강 악화 소식을 기쁨과 만족감으로 전해들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적에 대해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주셨다. “곧 우리는 이 사람과 그의 이단적 사상을 영원히 없앨 수 있을 거야!” 실로 그에 대한 그들의 투쟁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주요 출처:
<예언의 성취-엘리에제르 벤예후다>, 엘리에제르 벤예후다 (손자) 저 2008; <선지자들의 혀 – 엘리에제르 벤예후다의 생애>, 로버트 세인트 존 1952; https://goo.gl/MVmMUK; https://goo.gl/8r29uN
수정 사항:  3부의 모셰 세르토크 (샤레트)는 이스라엘의 2대 대통령이 아닌 총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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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잠자던 거인이 마침내 눈을 뜨다!

브라질은 2019년을 새 대통령과 함께 시작하는데, 이 사람은 이 땅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나라를 병들게 했던 부패한 구태 정치에 질린 브라질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된 사람이다. 새로 뽑힌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브라질 국내와 국제 사회 앞에 그의 정부를 당황시키고자 하는 시도로 국내외에서 매일 방송에 등장한다. 브라질 국민들이 실제로 대통령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하여는 할 말이 많지만, 브라질의 저명하고 중요한 목회자 세 분이 의견을 표명하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브라질 마오즈 이스라엘 대표
안데르송 산투스 목사

 

헤네 떼하 노바 목사와 마리따 사모. 헤네 목사는 브라질의 위대한 복음주의 리더이자 국제회복사역의 설립자다.

헤네 떼하 노바 사도
브라질 북부 마나우스, 국제 회복 사역

13년 연속 정권을 쥐고 나라를 국민들이 국내외적으로 무방비하게 발가벗겨지도록 사취한 좌파들의 엄청난 위선과 억압으로 브라질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었다. 좌파들은 빈곤층의 중독과 사회적 재앙을 부추겨, 5,400만의 가련한 백성들이 매월 기본적인 음식 꾸러미와 거짓된 생활 개선 제안들의 노예가 되게 만들었다.

브라질의 범죄는 가히 파괴적이었고 그 원인 중에는 부패와 빈곤이 있었다. 부패는 암이고 공국公國이다. 그러나 무너뜨릴 수 있다. 세르지오 모루 판사 (현 법무부 장관)의 모범적 성과를 따른 일단의 법학자들은 이 나라의 도덕적 방향성을 회복시켰다. 현재 우리 나라를 강탈한 권세 있는 자들이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이 나라의 도덕성이 세척되고 있다.

우리 경제는 황폐화되었고 보우소나루는 각 부처의 전문가들과 함께 새로운 정부를 꾸려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큰 차이점이다. 왜냐하면 직책들이 정치적 연대가 아닌 기능적 탁월함에 의해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의 위임의 시작에 있지만, 인수 기간에조차 우리는 주식 시장이 오르고 환율이 올라가며 투자의 조짐이 보이는 등 희망의 징표들을 보았다. 우리는 예외적인 정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보우소나루는 나라가 요구해왔지만 말과 감정으로 옮겨지지 못한 변화를 제안했다. 우리는 마취 상태로 반응을 안 했다. 새로운 제안으로 이제 잠자던 거인이 마침내 눈을 뜨게 됐다!

브라질은 기독교 국가로, 86%가 카톨릭 및 복음주의자다. 우리는 보수적이고 낙태, 동성 결혼, 젠더 이데올로기, 전통적 가정의 비하 혹은 우리 가치관의 훼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이 보우소나루가 선출되는 데에 도움이 되었고, 좌파 정당들과 이 원칙들을 거스르는 이념들을 파하였다.

이미 브라질 대사관이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은 확정되었다. 보안 상의 이유로 시점이 발표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시온주의 기독교인들이 그를 뽑도록 운동을 벌인 이슈들 중 하나였다. 그의 팀과 마지막으로 가진 대화에 따르면, 모든 것은 이 비범한 순간을 위해 준비가 되어 있다. 영부인 미셸 보우소나루는 리우 데 자네이루에 위치한 이그레자 바치스타 아치투제에 출석하는 거듭난 신자다. 그녀는 사회적 프로젝트들에 활동적인데, 거기에는 이스라엘의 기술과 키부츠 전문가들을 관개 작업을 위해 이 나라 북동부에 데려오는 것도 포함된다.

보우소나루라는 사람

진보적인 뉴스들은 보우소나루가 범죄를 씻어내려는 갈망 때문에 아마도 많은 사람을 죽일 것이라고 떠든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건 거짓말이다. 폭력배들은 그들이 나라를 위협한 만큼 처벌될 것이지만 UN이 정한 인권 협약들은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존중될 것이다. 보우소나루는 부패와 근소한 표차의 선거 결과들에 반대하여 강경한 대화를 하며 선거 운동했다. 그의 “민간 보안과 부패 청소 캠페인”은 전국민이 그의 편에 서게 했다. 그리고 승리했다!

보우소나루는 카톨릭이지만, 부인의 신앙 때문에 복음주의자들과 긴히 연대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만 주위에 둔 최초의 브라질 대통령이다. 그는 신앙에 아주 초점이 맞춰져 있고, 항상 가치관이 바로 선 사람들을 주변에 둘 것이다. 그는 지혜로운 조언을 귀히 여긴다. 이것이 그의 리더십의 가장 큰 비밀이다.

자베즈 알렝카 목사는 브라질 전국 하나님의 성회 교회들의 원로 리더 중 한 명이다. 이 사진에서 브라질의 또 다른 중요 복음주의 리더인 실라스 말라파이아 목사와 함께 그는 당선이 확정된 직후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브라질 하나님의 성회 지도자
자베즈 알렝카 목사

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당선이 진정한 기적이며, 해방을 향한 진정한 부르짖음으로 대표되는 브라질 국민들의 연합을, 그리고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통해 이뤄진 일이라고 본다.

항상 우리 나라를 지휘해 온 유대-기독교적 원칙에 완전히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수년 간의 좌파 정부들이 지나가고, 이제 우리는 소망이 부활하는 것을 보고 있다.

1500년대에 세워진 브라질은 항상 기독교가 다수인 국가로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원칙을 성경에 두었다. 그러나 브라질의 최근 두 명의 대통령은 사회주의적, 심지어 공산주의적 편견을 가지고 그러한 원칙들을 무너뜨리려 시도를 하고 만연한 불만을 일으켰다.

더욱이 우리 나라는 위기의 아주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폭력과 깊은 경제 부실 관리로 수백만의 실업자들, 그리고 인구의 30% 가량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사는 처지가 된 것이다. 우리는 수천 개의 산업체와 상용 시설들이 폐업하거나 부도나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겪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브라질 국민들은 반응하여 미래를 향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기로 했던 것이다. 보우소나루에게 표를 던짐으로 선거를 실질적으로 규정한 복음주의자들의 중요한 참여를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우리는 보우소나루가 근 30년의 공직 생활을 한 정치인이며 흠 잡을 데 없는 행실의 군인으로 부패에 전혀 연루된 바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영부인 미셸 보우소나루는 복음주의자로 많은 사회 프로젝트에서 일하고 있다.

보우소나루는 브라질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와 함께 내핍 정부를 꾸리겠다는 진심어린 제안을 했다. 폭력에 맞서싸우고 전적으로 진실에 기초하여, 서로 뒤만 봐주는 정부가 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브라질 외교에서 변화의 가망을 관찰해보면 좋은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제안하고 이미 실천하고 있는 내용이 있다. 미국, 이스라엘 및 여러 나라들과 더 가까운 관계를 가질 것이며 브라질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선거운동 내내 보우소나루가 직접 썼던 말들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브라질을 그 무엇보다 우선으로, 그리고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에프린 사도는 리우 데 자네이루의 대형 교회 꼬무니다제 아포스톨리까 비또리아 목사다.

리우 데 자네이루의 꼬무니다제 아포스톨리까 비또리아
에프린 낀타니유 사도

보우소나루는 무엇보다도 변화의 상징이다. 브라질 국민들은 이 대통령이 의미하는 바, 그리고 수호하는 바를 위해 표를 던졌다. 그것은 가정이라는 가치관과 도덕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처럼 그는 브라질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우리가 1947년 UN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형성을 지지한 후 경험했던 국가의 위대한 순간으로 돌이킬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기름 부으신 왕 예슈아의 귀환을 기대하는 나라로 인정 받을 것이다.

브라질은 새 대통령의 선출로 큰 기대의 순간에 있다. 브라질 사회가 갈망하는 유대-기독교 가치관에 근거한 정책들에 반하는 것들로 꾸려온 정부가 수년간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가, 새로운 대통령이 나타난 것은 도덕성과 가정이라는 가장 존귀한 원칙들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연합을 통해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부와 함께 하는 새 시대에 이스라엘이 주역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하는 브라질의 위대성이 회복되는 때에 번영하며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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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사랑하는 마오즈 동역자 분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 저희는 새롭게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 저희를 통해 어떤 일을 행하실지에 대한 기대로 시작합니다. 저희 딸 샤니와 사위 코비 퍼거슨, 그리고 밴드는 함께 예배 음악을 만듭니다. 잃어버린 자들에게 나아가는 거죠. 그게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마오즈는 몇년 전에 히브리어로 음악을 녹음하고 이스라엘과 해외의 여러 아티스트를 섬기는 일을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스라엘 지체들을 사용하사 유대 예배 음악을 전세계 신자들에게 확산시킬 계획을 갖고 계셨을 줄은 꿈도 못 꿨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계획은 굉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앞의 주요 기사에서 다뤘듯, 저희는 예언 성취에 동참하는 놀라운 영예를 누렸습니다. 갈릴리로부터 기름 부으심 있는, 아름다운 예배의 소리를 이스라엘, 중동 그리고 전세계에 전하는 것이죠!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열방의 빛이 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지금 여기 현대 민주 국가 이스라엘에서, 나사렛 출신의 아랍 가족인 샄흐니니 형제들은 어둠 가운데 빛을 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사야 9:1~2)

이스라엘은 빛이 되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전세계 교회 가운데 영적 자원이 되는 거죠. 그리고 저희는 세상이 볼 수 있는 이 빛을 비추도록 돕고 싶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배의 영역 가운데 나눠줄 수 있는 게 너무나 많고, 그 때문에 저희가 이스라엘 워십 이니셔티브를 세운 것입니다.

젊은 이스라엘 연주자와 싱어, 작곡가들에게 훈련과 영적 훈육을 제공하기 위해
전문적 녹음의 경험을 모든 지체들에게 열어주기 위해
이스라엘이 전세계 예배의 촉매가 되는 소명을 성취하도록 돕기 위해

샄흐니니 가족은 이곳 이스라엘의 하나님 왕국에 자신들의 달란트를 아낌없이 심었습니다. 이제 이들이 이스라엘과 중동의 아랍인들에게 목소리를 내라는 그들의 부르심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 건 우리 차례입니다. 그들이 그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통해 전세계 무대에 미칠 영향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은 앨범을 위해 자작곡과 아랍 찬송가 등 10여 곡을 수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2만 달러 가량의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부터 나오는 아름다운 예배의 소리로 2019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리&쉬라 소르코람

추신. 한 해를 옳게 시작할 수 있는 굉장한 방법은 경배와 찬양의 소리로 이스라엘과 중동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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