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019

/February 2019
February 2019 2019-02-03T07:28:39+02:00

군대에서 영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의 청년들을 준비시키며

0219-Top-Israeli-youth

매년 약 120명의 메시아닉 가정 출신 청년들이 입대한다. 이는 어느 시점에라도 군대에는 350~450명의 메시아닉 군인들이 복무 중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들이 믿는 동료들과 더욱 더 교제할 수 있게 만들고자 애를 쓰고 있다.

80년대 후반 내가 입대했을 땐, IDF에 복무하는 메시아닉 신자들은 아주 적었다. 나는 골라니 보병여단 소속이었고, 다른 친구는 낙하산 부대에, 또 다른 친구는 기브아티 보병여단에 있었다. 우리는 군대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이후 몇년 동안 점점 더 많은 이스라엘 신자들이 IDF에 복무하게 되었고, 몇몇이 성경 공부와 교제 모임을 시작했다. 군대에서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를 깊이 괴롭히는 것이 있었다. 나와 함께 자란 믿는 친구들 대부분이 계속해서 주님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메시아닉 가정에서 자란 많은 젊은 이스라엘인들은 믿음을 저버렸다. 많은 이들이.

어떤 이들은 믿지 않는 이와 연인 관계를 갖게 됐다. 어떤 이들은 전혀 자신의 신앙을 지킬 줄을 모르거나 자신이 믿는 바가 대체 무언지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까 군복무를 시작했을 때는 완전히 갈 바를 모르는 상태가 된 것이다.

0219-Joel-Goldberg-dog

네티바 (좁은 길) 단체 및 그 속의 네쪼르 (안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설립자이자 선구자인 조엘 골드버그

군대에서는 모든 것에 저항이 있다. 도덕성, 가치관, 우리의 성경적 이해, 윤리적 결정,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행보까지. 군복무는 믿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어렵고 힘겨운 시간 중 하나다. 영적 광야이기 때문이다. 인생 가운데 감정적으로 압박감을 받는 때다. 성적으로는 유혹이 있다. 힘든 씨름이다.

18, 19, 20, 21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을 복무한다. 스스로 누구이며 무엇을 믿는지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결정적인 인생의 한 때다. 이들은 살면서 가장 위태롭고 도전적인 때를 맞는다.

도움을 베풀어야

우리 단체 네티바 (“좁은 길”)는 매년 총 22건의 컨퍼런스, 캠프, 프로그램들로 이 청소년들을 섬긴다. 이들이 다가올 일들에 대해 영적으로 준비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는 중학교 1~2학년생들로부터 군복무할 연령대까지 메시아닉 젊은이들에게 영적 신병훈련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들을 격려하고 도전할까? 2~3년의 군복무 내내 지속될 수 있도록, 그들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줄까?

이들에게 다른 신자들, 특히 또래들과의 그룹에서 주기적인 교제를 가질 수 있는 자리를 빨리 마련해주면, 주님을 위해 살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확률은 높아진다.

약 10년 전 우리는 군입대 직전의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위한 네쪼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네쪼르는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도록 도전하고 지금 결정을 내리도록 격려하는 열흘 간의 코스다! 믿음 안에서 성장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예슈아를 섬기기로 전심의 결단을 한 적이 없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이 군대에서 길을 잃는 아이들이다. 올해 우리는 60~70명 가량이 네쪼르 훈련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오늘 선택하라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함을 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여호수아 24장에는 이스라엘 지도자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그러나 우리는 또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여호와와 다른 신들을 같이 섬길 수 없다고 경고했음을 안다.

“네쪼르”는 안전하다, 보호 받다라는 뜻이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우리는 이 젊은이들이 자기 마음을 지켜 군복무 중에 다가올 많은 도전과 정신을 산란하게 하는 것들에 대비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가치관에 대해, 성경의 위임에 대해-종이 된다는 의미를- 가르쳐 준다. 우리의 목표는 더 뛰어난 군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군대에서 섬기는, 더 뛰어난 제자들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복무하게 될 젊은이들에게 복음이 약속하는 소망과 진리를 더 잘 전하는 이들을 만들기를 갈망한다.0219-netzor

우리의 목표는 더 나은 군인들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군복무를 하는 더 나은 예슈아의 제자들을 만드는 것이다.

0219- netzor-bus

메시아닉 유대인 청소년들은 군입대 전에 60~70명 가량의 동료들과 열흘 간 야외에서 캠프를 하며 운동도 하고, 영적으로 무장한다. 매년 참여 인원은 늘어난다.

0219-netzor-camp-1

0219-netzor-camp-2

0219-netzor-camp-3

 

빛이 되는 것

군대를 가느냐 마느냐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여기가 우리가 사는 사회다. 우리 문화의 일부이며, 우리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 계속 해나가고 있는 씨름의 일부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그들이 어디에 있든 예슈아께 하듯이 최선을 다하도록 권면하고자 한다.

우리는 IDF의 고위직에서 복무하는 것이 사회의 존경을 받는 일임을 알고 있고, 그래서 정말 뛰어난 군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하면 최고의 병사 혹은 사령관이 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있든 빛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나누는 또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때로 그들을 최악의, 가장 어려운 곳에 두신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곳에 말이다. 그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과 진리를 전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항상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들이 네쪼르 프로그램을 마칠 때는 군복무를 하면서 예슈아의 종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0219-camo-soldier

* 연습

첫 번째 큰 어려움

메시아닉 신자들이 군대에서 마주하는 큰 어려움이 세 가지 있다. 먼저는 군인들이 군복무 중 영적 건조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1년, 2년, 3년의 일상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매일매일 신앙에 대해 도전을 받으며 지내는 것이 지치는 일임은 충분히 이해한다. 이 젊은이들이 그 긴 기간 동안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군대를 영적 광야로 본다. 그리고 이들에게 한 우물에서 다음 우물로, 한 샘에서 다음 샘으로 쭉 이어갈 수 있는 우물들을 공급해주길 원한다. 일주일 내내 영적으로 메말라 있다가 우리가 영혼을 위해 제공하는 영적 오아시스 같은 예배와 기도 시간을 찾는 120명의 군인들을 보지 못했다면, 진심의 예배가 무엇인지 아직 못 본 것이다.

내가 예배를 인도하는데 때로는 내가 연주를 멈추고 그냥 노래만 한다. 그러면 이들이 예슈아께 부르짖는 진심어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들은 심한 영적 광야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

0219-soldiers-praying

* 기도

두 번째 큰 어려움

두 번째 난관은 성적 순결에 대한 헌신이다. 남자들에게는 포르노를 비롯한 끝없는 유혹이 있다. 여자들 입장을 보면, 메시아닉 가정에서 자란 다정하고 순결하고 어린 아이들만큼 믿지 않는 젊은 군인들에게 매력적인 게 없다.

우리 남녀 청년들은 이 문제에 있어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 단순히 성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진정한 친구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컨대 메시아닉 가정에서 자란, 사랑스러운 여자 아이가 있다고 해보자. 이 아이는 진정한 신자다. 그런데 남자 아이들이 사방에서 추근댄다. 이 아이는 그러한 관심에 익숙지가 않다. 왜냐하면 메시아닉 사회에서는, 캠프를 가거나 컨퍼런스를 가도 남자 아이들이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 믿는 아이들은 굉장히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다!

사실 메시아닉 가정에서 자란 우리 청년들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존중심이 있다. 훌륭한 군인들이다. 여러 면에서 뛰어나다. 이들은 높은 가치관을 갖고 있어서, 심지어 정통파 유대교 여자 아이들이 메시아닉 남자 아이들에게 사랑에 빠지는 일도 있다! 왜 그럴까? 우리 아이들이 좋기 때문이다! 메시아닉 남자 아이들은 그러면 이 여자 아이들을 보고 말한다. “와, 메시아닉 사회 내에서 이런 여자 애들을 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사방에서 유혹이 닥쳐오는 것이다.

0219-soldiers-worshipping

* 예배

 

0219-soldiers-witnessing

Messianic soldiers on active duty witnessing to Messianic high school graduates preparing to enter the military.


세 번째 큰 어려움

세 번째 난관은 어떻게 믿음을 전하고 빛이 되느냐다. 메시아닉 병사들은 준비가 되어야만 한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신앙에 대한 진짜 정직하고, 근본적인 질문들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누구든 자신이 편안한 사람과 대화하면 됐다.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를 선택한다. 내가 믿는 게 무엇인지 알려줄 상대를 고르고, 내가 선택한 사람에게만 정직하고 마음을 열면 된다. 군대에선 그렇지 않다. 그냥 거기 있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365일 동안,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단순히 외적인 행동만 가지고 검토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을 검사 당한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와 모든 태도까지도. 사람들은 내가 믿는다고 하는 것에 어긋나는 태도를 잰다. 그러니까 군대에서는 내가 진정 누구인지를 감출 수가 없다. 나타나게 되어 있다. 군대에 임하는 태도로 드러난다. 태도를 통해, 하는 말을 통해, 붙드는 가치들을 통해 나타난다. 어떤 젊은 신자들은 그러한 점검을 받기가 싫어 아예 신앙 얘기를 안 하고자 한다.

그러나 많은 메시아닉 군인들은 증인이 되길 정말로 원한다. 빛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복음을 전하는 데에 가장 큰 어려움은 성경을 아는 정통파 친구들이다. 이들은 랍비적 관점에서 성경을 알고 있다. 이들의 도전은 더 깊은 것이다.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보여줘봐. 네가 믿는 걸 증명해 보여봐.” 그런 것이 네쪼르에서 다루는 도전들 중 하나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지, 왜 믿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변호할지를 알아야만 한다.

0219-personal-commitments

군대에서의 태도에 대한 개인적 헌신
●     정직한다  ●     욕설 사용 않는다  ●     옷차림을 단정히 한다  ●     불신 이성과 교제하지 않는다  ●     가정에서 인내한다  ●     친절하게 대하되 추근덕대지 않는다  ●     매일 성경을 읽는다  ●     가십을 피한다  ●     기뻐한다  ●     식사 전 기도한다  ●     공동체와 컨퍼런스에 출석한다  ●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

이스라엘 전국에서 모이다

우리 네쪼르 군입대 준비 프로그램에는, 이스라엘 전역의 각 공동체로부터 남녀 아이들이 모인다. 보통 우리는 60~70명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군생활을 시작하려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다. 골란 고원 야외에서 자는 열흘 간의 집중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이들과 등산도 하고 유대감을 쌓으며, 관계적인 활동도 한다. 복무 중인 군인들을 데려와 군대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듣는다.

우리는 생활 방식에 있어 하나님의 명령에 큰 강조점을 두고 성경을 공부한다. 4시간이라는 긴 세션 동안 우리는 윤리적 딜레마와 가치관을 논한다. 그리고서 자신들의 윤리관, 가치관, 예슈아께 대한 헌신을 적을 카드를 나눠준다.

헌신문 작성

우리는 이들에게 정직, 순결, 대인 관계, 존중, 가족 관계, 영적 성장, 공동체와의 지속적 관계 등 가치관들 하나하나에 대한 자신들의 헌신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쓰라는 과제를 준다. 이들은 주님 앞에서 헌신하는 것임을 안다. 그리고선 이 카드를 코팅해 각자의 성경에 끼워두도록 한다.

이는 이 청소년들이 책임 있는 삶을 살도록 돕는 데에 놀라운 도구가 된다. 우리는 군대 생활을 한 젊은이들로부터 간증을 듣기 때문에 안다. 이들이 직접 쓴 개인적 헌신은 신앙을 강하게 지키는 데에 과거에나 지금에나 큰 도움이 된다.

0219-netzor-volunteer-leaders

네쪼르의 자원 가이드들과 리더들

그리고 메시아닉 가정에서 자라 진리를 알지만 예슈아의 주 되심에 무릎 꿇지 않은 이들이 있다. 네티바에서 이들은 그렇게 할 기회가 있다.

수료할 때 우리는 각자의 공동체 장로 및 리더들과 부모님, 청소년 리더들을 초대한다. 그리고 이 젊은이들을 기도와 친밀한 관계로 지켜줄 것을 도전한다. 네티바 군입대 준비 프로그램은 보호망이 되었다. 젊은 군인들이 믿음을 굳게 지키도록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가 된 것이다.

연간 갖는 22회 이상의 모임, 캠프, 프로그램들은 꾸준히 우리가 전진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우리는 연간 4~6회의 군인 모임을 가져야만 한다고 본다. 대부분의 컨퍼런스는 군인들이 외출을 나오는 금요일~토요일 사이에 이뤄진다.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우리의 통계를 보자. 군복무를 하며 군인 컨퍼런스에 참석한 청년들의 90%는 청소년 컨퍼런스를 다니며 성장했다! 일찍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10대와 군복무 기간 내내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우리는 믿는 군인들에게 나아가는 것이 주님과 승리 가운데 동행하는 데에 필수적임을 보았다.

0219-soldiers-swimming

DONATE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5부: 엘리에제르 벤예후다, 테오도르 헤르츨을 만나다

0219-ben-yehuda

믿을지 모르겠지만, 엘리에제르 벤예후다는 예루살렘에서 첫 20년을 지내면서 히브리어를 퍼뜨리는 데에 아주 미비한 성과를 얻었다. 물론 그는 중요한 주간 히브리어 신문 (8 페이지)을 예루살렘에서 발간했다. 거의 2천년 만에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구어로서의 히브리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히브리어 사전 작업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테오도르 헤르츨에 대해 들어보기 19년 전에 이스라엘에 민족 국가를 세우도록 유대인들을 촉구한 글들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는 불과 25,000명의 유대인 뿐이었고 대부분 정통파였다. 이들은 히브리어를 유대 민족의 현대 구어로 만들겠다는 벤예후다의 비전의 극렬한 원수였다. 엘리에제르 부부에겐 동맹은 불구하고 친구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뭔가 마음을 뒤흔드는 일이 있었다. 놀랍게도 1881년 벤예후다가 이스라엘에 왔던 그 해에 최초의 유대인 무리 (“제1의 알리야”)가 귀환하기 시작했다. 이후 20년간, 35,000명의 유대인들이-대부분은 젊고 똑똑하며, 지적인 이상주의자-농사를 지으러 왔다. 그러나 농사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절반 가량이 동유럽으로 돌아갔다.

벤예후다가 살았던 예루살렘의 원시적이고 비위생적인 환경 탓에, 첫 아내 드보라와 다섯 자녀 중 세 명이 10년만에 죽었다. 드보라는 죽기 며칠 전에 모스크바에 사는 동생 파울라 요나스에게 편지를 보내, 제발 자신의 뒤를 이어 엘리에제르와 결혼해 달라고 간청했다. 히브리어를 부활시키는 그의 일생의 사명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파울라나 엘리에제르가 먼저 서신을 나눴는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곧 예루살렘에 소문이 퍼졌다. 홀아비의 어깨가 덜 구부정하고 눈이 다시 초롱초롱하며 걸음걸이가 쾌활해졌다는 것이었다.

편지는 헴다 (파울라의 새로운 히브리어 이름)와 엘리에제르 사이의 지중해를 건너다녔다.

엘리에제르의 가장 친한 친구 니심 베하르는 그와 긴 대화를 나눴다. “엘리에제르, 너 때문에 결핵에 걸려 죽은 아내의 19살 밖에 안 된 동생과 결혼할 생각을 어떻게 한 거야? 네 주치의가 너와 얘기해 보라고 사정을 해서 이 이야기를 하는 거야. 네가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건 네가 알잖아. 이 결혼은 취소해야 돼.”

그래서 벤 예후다는 자신이 느끼는 대로 했다. 헴다에게 서신을 보내 의사가 한 말을 전한 것이다. 결혼식은 취소됐다. 그는 스스로 편지를 보내지 못할까 걱정하여 의사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헴다의 결정

남아있는 엘리에제르의 두 자녀는 당황했다. 아버지가 더 이상 신나지 않은 상태로, 새 어머니가 오는 것에 대해 물어도 대답을 안 했기 때문이었다. 2주간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전보가 왔다. “침착하세요. 편지가 곧 갈 거에요. 헴다”

헴다는 부모님께 자신이 엘리에제르와 결혼해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예루살렘에 가서 살기로 결단했다는 발표를 했다. 부모님은 말할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또 한 명의 자녀를 결핵에 내바쳐야 한다니? 그러나 그녀의 단호한 결단을 본 부모님 (솔로몬과 리브카 요나스)은 헴다, 그리고 헴다의 두 동생과 함께 알리야 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독특한 가족이었다. 둘째 딸이 천재이지만 아주 병약한 사람과 결혼할 수 있도록 “땅의 끝까지” 가고자 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헴다와 엘리에제르가 나눈 맨 처음 진지한 대화가 어땠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엘리에제르는 그녀에게 히브리어를 배울 때까지 자녀들에게 말을 걸 수 없다고 했다!

함께 살다

이들이 이렇게 엘리에제르의 작은 집에서 함께 살게 됐다. 헴다의 부모님과 형제들, 엘리에제르의 어머니가 모두 함께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 중 솔로몬을 빼고는 아무도 히브리어를 못했고, 솔로몬의 수준도 초급이었다. 엘리에제르가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인쇄기를 집안으로 들이고, 인쇄사 5명이 매일 집에서 일하게 했다. 물론 히브리어 말고는 한 마디도 할 수 없다는 지시와 함께.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심부름을 하는 시리아 출신 종에게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까지 자신과 함께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0219-Ben-Yehuda-and-wife-Hemda,-1912

히브리어 학습

헴다는 금세 벤예후다 가정이 히브리어의 집으로 남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자신의 결정에 달렸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거의 모든 시간을 히브리어 공부에 쏟았다. 때로 그녀는 말을 배우지 못할까 낙심되어 눈물을 터뜨렸고, 히브리어 문법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엘리에제르에게 불평했다.

그러나 엘리에제르는 매일 그녀에게 수업을 했다. 그는 먼저 창세기 전체를 읽도록 가르쳤고, 매일 순전히 집안에서 써야하는 단어들을 배우라고 조금씩 알려줬다.

3개월 후 헴다는 엘리에제르에게 발표를 했다. 이제 그에게 히브리어로만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엘리에제르가 천천히 말하면 헴다는 이해할 수 있었다.

6개월 후, 헴다는 다른 발표를 했다. 그 날부터 향후 히브리어만 쓸 것인데, 남편과만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과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엘리에제르는 아내를 데리고 자파와 해안가의 신규 유대 정착촌들로 데려가 아내의 히브리어를 자랑했다!

어떤 이들은 헴다가 겨우 6개월을 공부했다는 것을 믿지 못했고, 엘리에제르가 농담을 한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헴다가 사람들에게 남긴 인상은 막대한 것이었다. 히브리어가 성인조차 배워 사용할 수 있는 언어임을 완전히 증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헴다가 배울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으니까.

사전

헴다는 히브리어 사전이 유대 민족 국가의 재탄생에 얼마나 기념비적인 의미를 갖게 될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엘리에제르가 전임으로 히브리어 신문을 발간하면서 동시에 세계 최초의 현대 구어 히브리 사전을 만들 수 있겠는가? 더구나 사전에 들어가야 할 대부분의 단어들이 아직 생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히브리어를 막 배운 헴다는 엘리에제르의 신문을 작성하고 발간하는 일을 도와, 그가 더 많은 시간을 사전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줘야 함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결혼하고 1년이 겨우 되었을 때 헴다는 엘리에제르가 편집하고 교정할 수 있는 간단한 기사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짠! 하고 새로운 히브리 언론인이 나타난 것이다! 모든 면에서 그녀는 일등 작가이자 기업가가 되었다. 홍보를 할 고객들도 찾았다. 이것도 예루살렘 최초였다. 재정이 항상 가장 문제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헴다의 아버지도 신문에 기고를 했다. 하누카 때, 아버지는 성전의 재봉헌과 관련하여 마카비의 승리에 관한 기사를 썼다. 옛 조상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솔로몬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병력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자, 이렇게 “앞으로”라는 히브리 단어는 “동쪽으로”라는 의미도 될 수 있다. “터키를 향하여!”와 같이 말이다.

안식일이 끝났을 때, 벤예후다가 성경의 히브리어를 현대 일상어로 만들려고 한다고 경멸하던 예루살렘의 초정통파 지도자들은 바로 오스만 투르크 당국으로 달려가 벤예후다가 투르크에 대해 반동을 일으켜 무장 봉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까발렸다!

반역죄로 투옥되다

일요일 아침, 오스만 투르크의 경찰들이 엘리에제르의 문을 두드리더니 그를 감옥으로 끌고 갔다. 그는 사형될 가능성과 함께 반역죄로 들어갔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 니씸 베하르는 돈 많고 권력 있는 프랑스의 에드몽 로췰드 남작에게 긴급한 탄원을 보냈다. 그는 자선을 통해 이스라엘 땅의 빈곤층, 특히 정통파 유대교인들을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베하르도 팔레스타인의 세속 유대인들에게 즉각 연락을 취해 엘리에제르에 대한 면회권을 받고 재판 때 할 말을 준비해줄 수 있게 필요한 뇌물을 지원해 달라고 했다.

돈은 금방 들어왔다. 1차 알리야를 통한 수백 명의 세속 유대인들이 전국에서 엘리에제르의 체포에 대한 반대 시위를 했다. 유대인 남성과 그의 아랍 파트너는 감옥 바깥에 특별한 카페를 차려, 벤예후다의 면회객들이 커피와 간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 많은 아랍 관료들은 엘리에제르의 친구로서 그의 편에 공개적으로 서서 투르크 정부의 화를 살 위험을 무릅썼다. 기독교인들도 도움을 손길을 내밀었다. 놀랍게도 이것이 유대인들을 전례없는 수준으로 연합시켰다. 초정통파 유대인들만 빼고.

8일 동안 폐결핵으로 수척해진 편집장 엘리에제르는 투옥되어 있었다. 첫 날밤은 15명의 암살범들과 함께 좁디좁은 감옥에 던져졌다. 너무나 자리가 비좁아 밤새도록 서있어야만 했다. 얼굴을 문 꼭대기의 작은 구멍으로 삐죽 내밀어 숨을 쉬어야만 했다.

하지만 다음 날, 감옥의 의사가 상당한 뇌물을 받고 벤예후다의 결핵 상태가 살인죄 사형수들의 목숨을 위험하게 할 정도라고 발표했다. 그래서 그는 독방으로 옮겨졌다.

감옥에서 일하다

헴다는 카페트와 침대, 매트리스, 의자, 작업 책상, 그리고 침대 시트, 램프, 책, 잉크, 종이, 차를 끓일 수 있는 작은 기름 스토브 등 물건들을 가져다주어, 그가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했다. 엘리에제르는 날이 갈수록 점차 차분해졌고, 필요한 대로 감옥에서 사전 작업을 할 수 있음에 만족해했다.

오스만 제국과 엘리에제르 벤예후다의 재판 날, 투르크 당국이 보기에 초정통파 유대교에서 그를 공식 파문했음은 명백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오스만 제국의 판사들은 그가 위험한 반역자는 아니지만 골칫거리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1년형을 선고했다. 둘째로 그의 신문은 너무나 많은 문제를 일으켜 1년 동안 영업 정지를 당했다!

모두가 재정 지원을 손에 쥐고 있는 로췰드 남작에게 달려 있음을 알았다. 그는 양쪽에서 전보와 편지를 홍수처럼 받았다. 정통파 랍비들이 전보를 받게 된 어느 날까지 남작으로부터의 응답은 없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EXERCEZ VOS PRIERES -로췰드 남작” 기도에 매달리라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일이 아닌 것에선 손을 떼고 있으라는 말이다.

갑자기 남작의 선의에 의존하고 있던 아쉬케나지 정통파들이 모든 일에서 물러섰고 세파라디 최고 랍비가 공개적으로 금지를 철회했다.

뇌물이 도착하다

벤예후다는 다시 하루에 18~19시간씩 사전 작업에 매달렸다. 그의 형에 대한 항소심이 다가오자, 남작은 1만 프랑 수표를 보내 절반을 뇌물로 쓰라고 했다. 벤예후다는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법원은 만 1년 동안 신문을 찍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4개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 4개월의 끝에 엘리에제르는 더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 예루살렘 시장이 임의로 그의 신문을 다시 1년간 휴간시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벤예후다는 암담했다. 하지만 항상 그에게 용기를 주던 헴다가 이것은 분명 엘리에제르가 정말 중요한 과업인 사전에 전적으로 집중할 수 밖에 없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말했다.

6개월 후, 또 한 번 거액의 뇌물이 로췰드에게서 왔고, 그는 신문을 계속 찍어낼 허가를 받았다. 이스라엘 전국과 유럽의 유대인들은 성지의 소식에 있어서 이 신문에 의지하고 있었기에 너무나 짜릿해했다. 신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기가 좋았다. 엘리에제르와 헴다의 재간과 열정으로, 젊은 유대인 작가들이 홍수처럼 기고해 왔다. 유대 문학에서 기념이 된 많은 이들이 이 작은 예루살렘 주간지를 통해 입문했다.

해안에서의 죽음

여전히 병마는 이 가족을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헴다의 아버지는 한동안 러시아에 가 있으려고 잡아둔 배를 놓쳤다. 자파에서 다음 배를 기다리며 그는 어떤 병에 걸려 몇 주 만에 사망했다. 헴다의 다섯 자녀 중 둘은 폐렴으로 죽었다. 헴다도 수년 간 말라리아와 류마티스 관절염에 시달렸다.

이스라엘 전국에서 유대인들의 삶 가운데 놀라운 갈등들과 높은 대가가 없이 이뤄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일부 새로 생긴 정착촌들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현재는 번창한 도시인) 하데라 마을의 모든 사람이 황열병으로 죽었다.

0219-Eliezer_in_his_house_in_Talpiot_neighbourhood_(id.34235242)

헤르츨이 시온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일어서다

1896년, 현재 이스라엘 현대 국가의 아버지로 알려진 테오도르 헤르츨이 <유대 국가>라는 폭탄 선언 같은 책을 썼다. 그것이 유대 민족이 고토로 돌아가야 한다는 각성의 시작이었다. 그는 1897년 8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유대인들의 최초 시온주의 회의를 촉구함으로 그 부르심을 이어갔다.

벤예후다가 최초의 시온주의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가지 못했다! 오랜 이스라엘 땅에 최대한 “토박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앞서 오스만 투르크 시민권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출국이 금지되었다.

헤르츨은 벤예후다에게 서신을 보내, 예루살렘의 편집장 벤예후다가 실행 회원으로 만장일치 선출됐음을 알렸다. 벤예후다는 굉장한 영광으로 여겼지만, 아! 회원 자격을 수락하면 팔레스타인에서 그의 활동은 금세 끝나게 될 것이었다. 사실 그는 신문에서 “시온주의”라는 단어조차 언급해선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리고 더 걱정이 커졌다. 헴다가 재발하는 말라리아와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창백하고 마른 것이었다. 그래서 순간적인 충동에 그는 아내를 유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6개월을 그곳에서 보냈고, 엘리에제르는 유럽 최고의 박물관과 도서관들에서 고대 히브리 단어들을 연구했고,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동양학자들과 회동했다.

헤르츨을 찾아서

유럽에 있으면서 그는 헤르츨을 만나고자 하는 불타는 갈망이 있었다. 그가 시온주의 운동 전체의 지도자라고 그를 바라보았는데, 벤예후다는 전 생애를 시온주의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대 민족의 고토를 향한 헤르츨의 비전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벤예후다는 헤르츨이 유대 민족을 다시 모으는 데에 히브리어의 중요성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음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었다.

잉글랜드에서 그는 헤르츨의 오른 팔인 맥스 노르도 박사를 방문했다. 엘리에제르는 유대 국어와 히브리어 사전의 절대적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냈고, 노르도는 동의했다. 노르도 박사는 엘리에제르에게 바젤로 가 헤르츨과 직접 이야기해볼 것을 권했다.

진력이 난 그는 가겠다고 했다. 헴다와 함께 그는 바젤로 갔지만, 도착했을 때 한 친구가 헤르츨은 바로 전날 비엔나로 떠났다고 했다.

친구는 헤르츨에게 금세 전보를 보내,  벤예후다 부부가 비엔나로 그를 만나기 위해 가는 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비엔나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또 한번 절망한다. 헤르츨의 아내에게 헤르츨이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중요한 인터뷰가 있어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헤르츨은 이슐의 쓰리 킹즈 호텔로 빨리 오라고 그들에게 전하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다시 기차역에 돌아온 벤예후다 부부는 안타깝게 기차를 놓쳐, 다음 차까지 여러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호텔로 향했다. 컨시어지는 그들에게 말했다. “헤르츨 씨께서 영접하러 기차 역으로 나가신 대상자 분들임이 확실하군요. 그런데 기차에 안 계셔서 유감을 표하셨습니다. 비엔나로 돌아가신 뒤, 또 바젤로 가셔야 하거든요.”

엘리에제르는 계속 이동을 할 돈이 없었다. 그들은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예루살렘의 집으로 향했다.

신문의 허가가 다시 나오길 기다리다

엘리에제르는 헴다가 집으로 간 사이 자신의 신문 발행 허가가 다시 나올 때까지 콘스탄티노플에 머물기로 했다. 밤낮으로 피를 토하며 그는 8개월간 침대 신세를 지냈다. 엘리에제르는 너무나 아픈 상태였다.

운명처럼 테오도르 헤르츨은 독일의 카이저와 만나기 위해 가는 길에 콘스탄티노플을 지나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에제르는 그를 만나기에 너무나 병든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헤르츨이 마침내 예루살렘을 찾았을 때에도 엘리에제르는 여전히 콘스탄티노플에 있었다. 헴다도 이런 귀빈을 맞는 모든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네 번째 자녀의 출산을 기다리며 침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헤르츨은 헴다의 집에 방문하겠다는 말을 전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마침내 회복한 뒤 벤예후다는 헤르츨과 대면하여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만나서 왜 현대 히브리 구어가 성지로 돌아가는 유대 민족 운동에 전략적 열쇠가 되는지를 설명하겠다는 것이었다.

0219-Theodor-Herzl

Theodor Herzl

마침내 헤르츨

그는 터키에서 비엔나까지 기차를 탔고, 비엔나에서 둘은 결국 만났다. 벤예후다는 하나의 언어 히브리어를 통해 유대 민족을 연합시킬 구체적 계획을 상세히 풀어놓았다. 자신의 생애 역작이 존귀한 히브리어 신문을 발행하고 히브리어 사전을 만드는 것이었음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의 학교들에 히브리어를 가르치라고 밀어부치고, 히브리 단어들을 결정할 위원회들을 만들고 히브리어로 예술과 문학을 가르치도록 장려하며 초기 유대 농부들에게 히브리어 학습을 도와준 이야기들을 했다.

그러나 헤르츨은 전혀 이해를 못했다. 그는 장래 국가를 위해 최적의 언어는 독어라고 확신했다. 헤르츨의 초점은 독일 왕가를 설득하여 술탄으로 하여금 유대인들이 고토에서 살 수 있는 인가서를 주도록 하는 것이었다. 엘리에제르 벤예후다는 그런 일이 불가능함을 알았다. 그는 완전히 깨어져 집으로 향했다. 헤르츨은 이 만남에 대해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또 우리의 운동에 필요한 것이 히브리어를 우리의 국어로 채택하는 것이라고 나를 설득하려 한 젊은 광신도를 만났다. 물론 어처구니가 없었다!”

비탄에 빠진 엘리에제르

엘리에제르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좀 달랐다. “상황이 절박해요. 헤르츨은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인가서를 사들이는 데에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다른 이야기는 전혀 안 하려 해요. 그는 신문이나 사전에 아무 관심이 없소. 우리는 실로 불쌍한 사람들이구려.”

벤예후다는 헤르츨을 다시 보지 않았다. 몇몇 역사가들은 이후 헤르츨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직접 히브리어 수업을 몇 번 받기까지 했으며, 자녀들에게는 분명히 히브리어를 가르쳤다고 말한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벤예후다는 항상 헤르츨의 편에 섰으며, 그를 시온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헤르츨이 벤예후다의 어떤 활동이나 그 대의를 위한 노력을 인정한 적이 없음에도, 헤르츨이 1904년에 죽었을 때 엘리에제르 벤예후다는 시온주의 운동의 아버지가 타개한 것에 깊이 애통했다.

주요 출처:

<예언의 성취, 엘리에제르 벤예후다>, (손자) 엘리에제르 벤예후다 저, 2008; <선지자들의 언어, 엘리에제르 벤예후다의 생애> 로버트 세인트 존 저, 1952; https://goo.gl/MVmMUKhttps://goo.gl/8r29uN

DONATE

0219 - MIR - page 12 - netiva programs

이는 군복무 중인 메시아닉 신자들의 영적 건강을 위해 우리가 구성하고 운영하는 많은 컨퍼런스 및 프로그램 중 일부다. 설립자 조엘 골드버그는 왼쪽에서 네 번째다.

프로그램 포함 내용:

네쪼르

10일 – 군입대 준비 프로그램
고졸 청소년 (17~18세) 60~80명 참가

화살

10주 – IDF 대비를 위한 제자 훈련 및 리더십
고졸 청소년 (17~18세) 20~30명 참가

군인 컨퍼런스&세미나

주말 양일
현역 군인 120~150명 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7일 – 지중해에서 갈릴리까지 96km
17~18세 청소년 + 군인 80~100명 참가

청소년 컨퍼런스

연간 10회 – 주말 양일

DONATE

2019년 2월

사랑하는 마오즈 동역자 분들께,

이스라엘에서 40년 넘게 사역을 하다 보니 저희에겐 이스라엘의 초기 메시아닉 선구자 친구들이 많습니다. 저희는 그들의 자녀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 그들이 청소년이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이제 많은 이들이 주님을 섬기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믿지 않는 배우자를 만났죠.

저희는 믿음을 떠난 친구들의 긴 명단을 갖고 있으며, 매일 함께 기도하는 시간에 그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저희는 그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자비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저희는 그 부모들을 압니다. 그들과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깨어진 심령 가운데 자녀들과 배우자들, 또 손주들의 구원을 위해 주님께 부르짖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수십년 전 저희가 이스라엘에 왔을 때, 모든 실질적 이유들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영적인 공급이 너무나 적었습니다. 저희는 저희 자녀가 다른 믿는 자녀들을 만나게 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까지 차를 끌고 다녔습니다.

오, 이제 얼마나 상황이 바뀌었는지요!

역시 초기 메시아닉 사역자들의 자녀인 조엘 골드버그는 이 어려운 시절을 거쳐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이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며 아파했습니다. 그러한 아픔 때문에 그는 네쪼르라는 놀랍게 성공적인 프로그램을 일궈냈습니다. 중학생부터 군복무를 마친 아이들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죠.

조엘과 그의 네쪼르 스태프는 매년 22개의 컨퍼런스와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죠! 수백 명의 메시아닉 청소년 및 군인들이 이 모임에 함께 합니다. 어떤 청소년들은 전심으로 주님을 섬기겠다는 헌신을 처음으로 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이스라엘 방위군에서 승리로 섬기겠다는 마음을 굳게 하고, 그 기간 동안 믿음을 지킬 뿐 아니라 더 성장합니다.

네티바 사역은 여러 면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일합니다. 예컨대 여자 아이들만을 위한 컨퍼런스가 있고, 남자 아이들만을 위한 것도 있습니다. 시작하는 리더들을 위한 컨퍼런스도 있죠.

하지만 열흘 간의 군입대 준비 프로그램인 네쪼르만큼 더 전략적인 컨퍼런스는 없습니다. 60~70명의 청소년들이 IDF 신병 훈련 센터의 문에 들어서기 며칠 전에 참석하는 프로그램이죠. 이 모임은 젊은 메시아닉 입영 대상자들에게 놀라운 영적 북돋움이 됩니다. 스스로를 준비하도록 도와주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며 처음으로 새로운 친구, 새로운 권세자, 새로운 규칙들을 만날 때 인도해주심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죠.

그렇습니다. 저희는 계속적으로 신앙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슈아께서 누구시며, 그 분이 인류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들어본 적 없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말을 거는 거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요. 또 헌신된 부모 밑에서 믿음의 가정에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 군대에서의 놀라운 유혹과 덫을 마주해 믿음을 떠나는 걸 보면서, 그들을 예슈아의 팔로 안전히 안아주려고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7월에 있을 네쪼르 프로그램에 드는 비용은 6천만 원입니다. 물론 숙박, 교통 등 대부분의 비용은 미리 예약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저희는 네쪼르 프로그램을 재정적으로 후원해주시고 이 프로그램을 함께할 젊은이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그들이 군대에서 나올 때 전보다 더 믿음이 굳건해지고 든든한 메시아 예슈아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메시아닉 청소년들의 구원을 위하여!

아리&쉬라 소르코 람

추신. 네쪼르 프로그램을 위한 재정은 현재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베푸는 마음에 감사 드립니다!

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