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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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19 2019-04-14T07:14:27+02:00

“텔아비브를 먹이라" 프로젝트

0419 - Top - Aviv center- Ron Cantor

티프에렡 예슈아 공동체의 론 캔터 장로가 현재와 영원을 위한 소망을 전하는 중에 텔아비브의 노숙자들이 집밥을 대접 받고 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빛은 가장 밝게 빛나는 법.

티프에렡 예슈아는 텔아비브의 잘 나가는 금융의 중심가와 이스라엘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되었으며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텔아비브 남부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수년 전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려고 거리로 나가기 시작했던 때, 우리는 우리 공동체와 가까운 곳에 있는 많은 이들의 절박한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다가가라는 마음을 주셨고, 그래서 우리는 2017년 12월에 “텔아비브를 먹이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리는 집에서 요리한 따뜻한 음식 냄비를 가지고 텔아비브 중앙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이스라엘 범죄의 본산”이라고 할 정도로 노숙자와 마약 중독자들이 결국 불법 노동자와 아프리카 난민들을 만나는 최악의 지역이다.

매주 목요일 우리는 준비한 모든 것을 가장 어려운 지역에 위치한 급식소로 가져간다.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영양가 있는 음식, 따뜻한 옷, 찬양곡과 소망의 복음을 가지고 기다린다. 금요일에는 우리 공동체 소속의 한 부부가 여러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저녁을 준비해 먹을 데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야외에서 배식을 한다. 유대 문화에서 금요일 저녁 식사는 가족과 따뜻함, 그리고 함께함의상징이다. 그러므로 금요일 저녁마다 중앙 버스 정류장 옆의 공원 한가운데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숙자들은 안식일의 집밥을 먹으며 사랑과 돌봄, 기도와 복음의 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바로 지난 해 너무나 많은 사람을 만난 우리는 그들 가운데 한 가지 공통점이 절망임을 알게 됐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저주하셨고, 사회의 쓰레기로 살도록 정죄하셨다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격려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이들의 심령 가운데 드러내시며, 하나님께 이들이 얼마나 존귀한지를 보여주시라고 수백 번 기도했다. 한 번은 완전히 깨어진 한 마약 중독자 여성을 위해 기도했다. 그녀는 공원 벤치에 거의 기절한 상태로, 심신의 고통 속에 소리내어 울부짖고 있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증거했는데, 기도했을 때 놀라운 평안이 그녀에게 임했다. 그녀의 얼굴 표정은 완전히 바뀌었다. 며칠 후 다시 그 곳을 찾았을 때, 우리는 그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같이 기도한 그날 밤에 죽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중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그날 우리를 보내셨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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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들”에게 싸구려 맹독성 대마초와 담배를 받아 섞어 피운 이 남성은 좀비 같은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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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에라도 나가보면 사람들이 거리에서 마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춘부를 찾던 남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다

마약과 매춘이 우리가 사역하는 지역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약이나 성을 사러오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어느 저녁, 그 지역에 매춘부를 구하러 온 한 남성이 우리가 있는 것에 관심을 갖고 우리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물어왔다.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 말씀을 한참 동안 나눈 뒤, 그는 그 대화에 눈에 띄게 감동을 받은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 “나는 오늘 예쩨르 하라 (악한 본성) 때문에 섹스를 하려고 여기 왔는데,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됐네요.” 그는 차에 올라타더니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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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밤, 자원 봉사자들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눠주며 소망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노숙자 무슬림이 하나님을 갈급하다

거의 매번 그곳에 갈 때마다 우리는 나이든 노숙자 사미르 (가명)와 마주친다. 그는 보통 휠체어에 앉아 교차로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나는 무슬림인데 어떻게 텔아비브까지 오게 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분명 그는 자기 마을에서도 노숙자였다. “우리 마을에서 나는 완전히 무시 받고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어요. 그래도 여기 텔아비브에서는 사람들이 내게 자비를 베풀고 도와주거든요.” 사미르는 항상 우리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왔는데, 복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또 그 지역의 많은 마약 거래상들이 무슬림이라 그는 우리와 믿음에 대한 대화를 함으로써 그들의 주의를 끌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런데 2018년 12월, 독일 글라우벤스첸트룸 성경 학교에서 온 학생들 무리가 아웃리치로 우리와 함께 섬기고 있었는데, 한 여학생이 사미르를 보고 그를 위해 기도할 마음이 생겼다. 춥고 비가 부슬부슬 오는 거리 모퉁이에 서서, 이 여학생은 사미르를 위해 영어로 기도했고 나는 통역했다. 사미르는 온기가 충만해지며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날 이후 사미르는 예슈아를 구하며, 더 알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나는 사미르를 매주 보는데, 하나님을 향한 그의 갈급함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예슈아와 저 유대인들”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누가 들을까봐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왕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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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프에렡 예슈아의 자원 봉사자들이 따뜻한 음료와 함께 텔아비브 노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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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동체의 자원 봉사자들이 거리의 사람들과 함께 성찬 테이블에 앉은 모습. 집밥을 먹으며 영양을 보충할 뿐 아니라 마음 속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섬김과 기도를 받는 가족 식사의 장면 같다. (거리의 사람들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착취와 학대를 당해왔다.)

2019년 “텔아비브를 먹이라” 프로젝트를 위한 우리의 비전

올해 우리는 아웃리치를 크게 확장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아가고자 한다. 지금 우리가 아웃리치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공간은 한계에 다다랐다. 우리의 목표는 매달 이 도시에 있는 천 명의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따뜻한 음식, 신선한 야채나 과일, 음료수로 섬기고, 추운 계절에는 따뜻한 담요와 옷가지를 전하는 것이다.

2천원이면 한 사람을, 2만원이면 열 명을 먹일 수 있다. “텔아비브를 먹이라” 프로젝트를 통해 메시아의 사랑과 자비의 복음은 계속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이고 궁극적으로 이 도시에서 가장 크게 예슈아를 증거할 것이다.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태복음 25:36

오늘 “텔아비브를 먹이라” 프로젝트에 동참하여 이 도시의 가장 빈곤한 이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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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프에렡 예슈아 공동체의 아주 사랑 받는 장로이자 “텔아비브를 먹이라” 프로젝트의 설립자/운영자인 모티 코헨.

DONATE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 7부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 그 성공의 비밀꿈의 사람, 비전의 사람, 교사, 멘토, 사전 편찬자, 정치인, 조직자, 모범, 전략가, 학자, 투사, 동족을 겸손히 사랑한 사람, 성경을 공부한 사람

0419 - Ben Yehuda with Hemda and Judelovitch

왼쪽부터 엘리에제르, 아내 헴다, 엘리에제르의 제자 출신으로 정착촌 학교들에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선도적 교육자가 된 다비드 유델로비치

 

1914년 팔레스타인에 큰 전쟁이 번지자, 오토만 투르크는 예루살렘과 정착촌의 유대인들 가운데 첩자와 밀고자들을 색출했다. 그들은 시온주의를 원수로 보았고, 벤 예후다는 분명 그 명단의 맨 꼭대기에 있었다. 사실 11년 앞서 자선가 로스차일드 남작이 뇌물을 주지 않았더라면 벤 예후다는 반역죄로 처형되었을 것이었다. 그 아들 벤 찌욘은 자신의 언론 필명을 이타마르 벤 아비로 바꿨고, 그가 반역죄로 사형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자 가족이 운영해온 신문을 조심스레 폐간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투르크족은 유대 정착촌을 파괴하고 동물과 도구들을 약탈했으며, 선구자들이 심은 나무들을 베고 곡식들을 망가뜨렸다. 벤 예후다의 꿈이 짓밟히고 있는 것이었다. 며칠 내내 그는 먹지를 못했다.

아내 헴다는 어떤 투르크 장교가 그가 집필하는 사전의 남은 부분의 원고와 노트들을 몰수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몰래 그것들을 미국 영사에게 전했다. 그는 뉴욕의 금고에 안전히 보관하겠다고 헴다를 안심시켰다.

초정통파 유대인들을 위한 자선금이 도착하지 않고 은행도 열지 않아, 기근과 빈곤이 닥쳐왔고 그 뒤엔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그 땅을 집어삼켰다. 믿을 수 없게 동시에 메뚜기라는 끔찍한 재앙이 나라를 덮쳐 얼마 남아있지 않던 작물들을 삼켜버렸다.

헴다는 엘리에제르의 건강과 안전을 너무나 걱정하여, 전시 동안 미국으로 떠나있자고 제안했다. 예루살렘의 대혼란 속에서 그는 사전 작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상태였다. 헴다는 뉴욕에서 평안하게 사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으리라 설명했다. 그러나 벤 예후다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절박한 상황일수록 동족과 함께 있으려 했다.

하지만 그 땅의 다른 시온주의 지도자들 역시 그를 걱정하며, 국보급 인생을 위험에 빠뜨릴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 유대인들을 설득하여 전쟁 가운데 독일이 아닌 영국 편에 서도록 만드는 중대한 미션을 주어 헴다와 함께 미국으로 가도록 공식 지정했다.

팔레스타인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영국이 결국 전쟁에서 이기기를 바랐지만, 그들에겐 미국이 필요했다. 만에 하나 독일이 이긴다면 그 동맹 오토만 투르크도 승전국이 되어, 고토 이스라엘에 유대 민족의 국가를 세운다는 시온주의의 꿈은 끝나기 때문이었다.

벤 예후다의 출국 허가를 거부한 투르크족

드디어 벤 예후다는 마지못해 미국에 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어떻게 그와 가족이 나라를 몰래 빠져나가느냐였다. 투르크가 그들 나름의 이유로 그가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배를 타기 위해 자파로 향했다. 그러나 초정통파 유대인들이 그들의 탈출을 투르크에 밀고했고, 연안에 있는 배로 갈아타기 위해 바지선을 타고 가고 있던 중에 가족은 붙잡히고 말았다. 두 번째 시도에 하이파 만에 있던 오토만 군사령관은 엘리에제르의 허가증에 도장을 이렇게 찍었다. “위험한 언론인, 팔레스타인 어느 항구에서도 나가는 것을 불허함!”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다.

세 번째에는 엘리에제르의 가까운 아랍 친구 두 명이 군사령관을 아주 늘어진 저녁 식사로 붙들고 있었고, 엘리에제르 가족은 자파 오렌지로 가득한 배에 뛰어올랐다. 오렌지는 사실 절반만 차 있었는데, 유대인 농부가 오렌지를 파는 것보다 벤 예후다를 해외로 내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 어려운 시절로서는 막대한 경제적 희생이었다.

미국 시온주의 연맹과의 만남

미국 대법원 판사 루이스 브랜다이스 박사 

미국에서 벤 예후다는 평생 전례가 없을 정도로 먹고 마셨다. 많은 저명 유대인들이 이미 엘리에제르와 헴다를 알고 있었는데, 전세계의 탁월한 학자와 정치인들이 꾸준히 벤 예후다의 예루살렘 집을 거쳐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벤 예후다가 연설을 할 수 있도록 엄청난 환영 연회가 마련되었다.

이스라엘 땅의 유대인들을 향한 위험과 도전, 가능성에 대한 그의 열정과 명확성은 엄청난 열매를 맺었다. 그는 강하게 밀어부쳤다. “우리 유대인들은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맡을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보여줘야만 합니다.” 그 자리에 있던 루이스 브랜다이스 박사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막역지우였을 뿐 아니라 최초로 미국 대법원장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엘리에제르에게 시온주의에 마음이 있는 미국의 주요 유대인 지도자들에게도 동일한 연설을 할 것을 부탁했다. 사흘 후, 연합국의 편에 서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놀랍도록 중요한 승리로, 결국 미국이 연합국에 가담하도록 이끈 것이었다.

4년 동안 사전에 집중하다

부유한 헨리 모겐도 주오토만 제국 미국 대사는 벤 예후다 가족을 위해 집을, 또 뉴욕 공공 도서관에 한 방을 마련해 그가 사전 작업에 필요한 모든 책들을 넣어주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엘리에제르는 쉼 없이 일을 할 수 있었고, 의식주나 정통 유대인과 투르크 족이 문앞에 찾아와 괴롭힐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앞서 그가 작성한 노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미국 영사가 보관 중이었지만, 그는 나머지 알파벳 글자들을 위한 연구 대부분을 완수할 수 있었다!

엘리에제르의 60번째 생일을 맞아 카네기 홀에서 대규모의 잔치가 준비되었다. 그는 여러 연설자들에게 칭송을 받았는데, 이들은 그를 고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 비견했다. 그들도 인기가 없었던 적이 많았지만 부르심에 항상 진실되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마무리로는 미국 유대 사회에서 가족들에게 1만 달러를 선물해 예루살렘에서 집을 지을 수 있게 해줬다!

대통령과 이스라엘에 대해 이야기나눈 브랜다이스

그러나 벤 예후다는 할 일이 하나 더 남았음을 알았다. 그는 브랜다이스 판사와의 관계를 기회가 있을 때에 이용해야 함을 알았다. 그에게 애원해 그의 모든 영향력을 다해 윌슨 대통령을 설득해 유대인들의 고토에서 민족적으로 살 합법적 권한을 인정해야 함을. 브랜다이스는 확신이 없어 그는 실제로 팔레스타인 유대인 사회가 주권 국가를 세울 기반 시설을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하는지 벤 예후다에게 물었다.

벤 예후다는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는 젊은 이민자와 그 땅에서 태어난 이들로 이뤄진 생기 있는 세대가 그 땅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미국 전역의 유대인 단체들에 이스라엘을 대변하도록 즉각 옮겨간 자신의 아들 벤 찌욘을 소개했다. 그래서 브랜다이스는 유대 국가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 거의 믿음이 없던 대통령에게 그 주제를 꺼냈다. 브랜다이스는 벤 예후다가 한 말을 반복했다. 벤 찌욘을 예로 들면서 이스라엘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대인들의 새로운 세대가 가진 능력을 전했다.

빌리 선데이와 베니 새터데이

0419 - Evangelist Billy Sunday

전도자 빌리 선데이

너무나 이상한 이유로 윌슨 대통령은 미국의 위대한 전도자 빌리 선데이를 생각하게 됐다. 그는 우연히 그 때 복음을 전하러 워싱턴 DC에 머물고 있었다. 윌슨 대통령은 브랜다이스에게 벤 찌욘으로 하여금 성경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에 대해 무대 연설을 할 수 있겠냐고 물으라 했다. 대통령은 끔찍한 전쟁 이후 나라들 간의 국경을 정리하기 위한 컨퍼런스에 그를 대표로 보내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 예루살렘에서 온 젊은이에게 무대를 넘겨 준 빌리 선데이는 말했다. “성경의 땅에서 온 참 이스라엘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베니 새터데이(역주: 벤 찌욘의 벤을 따서 “베니”라는 애칭으로 만들고, 기독교인인 자신의 이름 선데이와 대조되게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이기에 “새터데이”라고 부름)를 반겨주십시오!”

빌리 선데이는 그를 꼭 안아주며, 등을 힘차게 토닥였다. “벤, 진리를 전해줘!” 벤 찌욘은 에스겔 37장을 인용했고, 거대한 기독교인 청중들에게 하나님께서 성지 가운데 새롭게 부활한 유대 민족을 일으키고 계신다고 말했다. 무리는 그를 지지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베니 새터데이! 베니 새터데이!”

그리고 이제 이름을 이타마르 벤 아비로 바꾼 벤 찌욘은, 그렇게 윌슨 대통령이 파리 평화 회의의 약소국 회의에 보낸 유대 시온주의 운동의 대표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빌리 선데이의 천막 집회에  참가한 21,000명의 기독교인들이 벤 예후다의 아들 “최초의 히브리어를 쓰는 아이”가 전한 유대 민족의 부활을 두 눈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 탄생 약 30년 전의 일이었다.

발푸어 선언의 탄생

0419 - Itamar Ben Avi

본래 벤 찌욘 벤 예후다인 이타마르 벤 아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국가 건설을 위한 가속도는 붙어가고 있었다. 영국은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 유대 민족에 공감을 하는 영국 의회의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발푸어 경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게 유대 국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윌슨은 호의적이었다. 1917년 11월 2일, 발푸어는 영국 정부가 “유대 민족을 위한 민족적 집”의 건설을 호의적으로 바라본다고 발표했다.

벤 예후다는 아직 미국에 있었지만 황홀감에 빠졌다! 그는 시편 126편의 말씀을 풀어 이렇게 대답했다. “주께서 시온을 속박에서 회복하셨을 때 꿈 같았도다.”

그로부터 딱 두 달 후, 투르크는 예루살렘 성을 신실한 기독교인 에드먼드 알렌비 장군에게 내주었다.

집으로

벤 예후다는 한 가지, 오로지 한 가지만 원했다. 집에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배로라도 갈 수 있는 항로를 찾는 데에 수개월이 걸렸다. 뉴욕항에 그를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은 수백 명이었다.

배가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 이들은 팔레스타인 국경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전선에서 새로운 영국 총독은 벤 예후다를 쌍수로 환영하며,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보였다. “샬롬 알레잌헴 [그대들에게 평안을]!” 그의 모든 비전어린 꿈들에도 불구하고 엘리에제르는 영국의 권세자가 자신에게 히브리어로 인사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말을 걸려 하지 않았다. 그가 전쟁 중에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그의 집은 다 털렸다. 그의 비서가 자기 가족의 생존을 위해 집안의 가구를 모두 팔았기 때문이었다. 엘리에제르의 서재만이 잠겨 있었기에 그대로였다. 그러나 다른 모든 방은 불법 거주자들이 들어찼고, 그들을 내쫓는 데에는 법정 소송을 거쳐야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을 위한 그의 원고들을 미국 영사에게서 안전하게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산 레모 –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

그러나 엘리에제르의 생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산 레모 회의의 소집이었다. 오늘날은 발푸어 선언보다 훨씬 덜 알려져 있고 덜 기념되지만, 산 레모는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다. 실로 발푸어 선언은 유대 민족을 위한 민족적 집을 세운다는 발상을 지지한 최초의 공적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제 52개국이 승패에 따라 땅들을 분할하고자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한 가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산 레모는 유대 국가를 어떻게 하려 했을까? 다시 말하지만, 엘리에제르는 먹지도 자지도, 가만히 서지도 못했다. 사전 작업조차 못했다. 그러던 어느 아침, 이타마르가 케이블 하나를 들고 집으로 달려와 52개국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국의 위임 통치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고 전했다. 발푸어 선언에 명시된 원칙들에 따라 통치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목적을 이뤘다”

엘리에제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의 손자가 쓴 책 <예언의 성취>에 따르면, 그는 이 모든 것이 예언의 성취라고 느꼈다고 한다. 메시아 시대가 코앞에 이른 것이었다. 그는 소리쳤다. “이제 나는 인생의 목적을 다 이뤘다. 평안히 눈감을 수 있다!”

1920년 4월의 산 레모 결의안은 확실히 국제법 적인 측면에서 발푸어 선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생각해보라! 52개 국가가 발푸어 선언을 비준했고 영국이 유대 국가를 위한 준비를 할 것을 위임했다. 더욱이 1922년 7월 24일에는 국제 연맹이 산 레모 선언을 비준했다!

히브리어가 공식 언어가 되다

기적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대영제국이 유대인 허버트 사뮤엘스 경을 영국 위임령의 고등 판무관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사뮤엘스 경은 엘리에제르와 헴다를 자신의 안식일 예배와 점심에 공식 귀빈으로 초청했다. 그는 벤 예후다에게 자신과 자녀들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쳐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때 사뮤엘스 경은 히브리어를 영어, 아랍어와 함께 자신의 정부의 법적 언어로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일이 있었던 게 1920년 6월 11일이었다. 엘리에제르의 기쁨은 한이 없었다.

사뮤엘스 경은 벤 예후다에게 이제 빨리 병원, 보건소, 통신사, 커피숍, 레스토랑, 다양한 정부부처 등 새로운 어휘들을 왕창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 엘리에제르에겐 얼마나 영광스러운 날이었는지! 많은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국가 재탄생이 임박했다고 확신했다.

0419 - Dr Chaim Weizmann

벤 예후다를 마지막으로 찾아온 하임 바이츠만 박사는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 땅으로 이민하도록 어떻게 촉구할 것인가를 논했다. 그는 이스라엘 국가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아랍의 폭력과 “백서”

그러나 그 날이 오기 전에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이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사뮤엘의 임기 첫 5년 동안, 아랍의 폭력과 통제 불능의 봉기들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1922년 6월 3일에 비극적인 “백서”를 전하게 됐다. 향후 5년간 단 75,000명의 유대인만이 성지로 이민올 수 있으며, 이후에는 이민이 금지된다는 선언이었다.

이것은 끔찍한 소식이었다. 발푸어 선언의 탄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유명 화학자 하임 바이츠만은 이스라엘에 가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민 갈 수 있는 이 작은 기회의 창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유대인들은 아랍 봉기가 두려워 이민을 안 가고 있었다.

바이츠만은 벤 예후다를 몇 시간 동안 만났다. 그는 엘리에제르에게 유대인들이 돌아올 것을 촉구하며 또 한번 나팔을 울려달라고 간청했다. 벤 예후다 말고는 그처럼 열정적인 탄원문을 작성할 수 없을 것이고, 이 요청은 극도로 긴급한 것이었다. “바로 지금 와야 합니다!” 바이츠만은 사정했습니다. “문이 열려 있는데, 우리 민족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래 가지 않을 기회의 순간입니다.”

벤 예후다는 진이 빠져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기침을 했으며, 피를 토하는 기침을 할 때마다 그의 기력은 점점 더 쇠해졌다. 그러나 바이츠만이 주장했을 때 벤 예후다는 대답했다. “그대가 지도자입니다. 그대의 바람이 곧 명령입니다. 제가 써 드리지요.”

사흘 동안 벤 예후다는 글을 쓰려 했다. 그런데 안 써졌다. 그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헴다가 한밤중에 그의 방을 찾아와 다음 날에 쓰면 되니 이제 자라고 했다. 그는 곁에 있던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잠시 후에 헴다를 불렀다. 그는 호흡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도움을 요청한 것이 순간적이었는데, 곧 다섯 명의 의사가 그를 살피러 왔고 자녀들도 그를 둘러쌌다. 그는 산소 마스크를 썼고, 1분 동안 눈이 총명해지더니 히브리어로 말했다. “나는 믿어!” 그는 다시 소파에 쓰러져 쉬었다. 몇 분 후 그는 떠나고 말았다. 1922년 12월 16일의 일이었다. 그는 64세였다.

유대 “국가” 최초의 국장

갑자기 그의 위대함이 인정되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3만 명의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올리브 산에 안치된 그의 무덤으로 향하는 행렬을 이뤘다. 전국에서 정착민들이 찾아왔다. 초정통파들도 있었다. 실로 유대 국가 최초의 국장이었다! 팔레스타인은 3일 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갖도록 명령했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국가가 탄생하는 모습을 보기까지 25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모든 학교들은 이미 히브리어로 가르치고 있었다. 엘리에제르와 헴다는 다섯 권의 사전을 펴냈다. 그리고 그는 다음 11권을 위한 자료들을 준비해 두었다. 법원, 극장, 사업, 사회, 공공 문제가 유대 사회에서 모두 히브리어로 굴러가고 있었다.

0419 - Eliezer Ben Yehudas death bed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1858~1922). 그가 죽은 밤 헴다는 다윗의 별이 그려진 국기로 그를 덮어줬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유랑” 중이던 4년 동안 미국 유대인들이 준 것이었다.

그의 비밀은 무엇이었는가?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는 치명적인 결핵을 41년 동안 달고 살았으며, 그것은 그의 첫 아내를 결혼해서 10년 밖에 못 살고 죽게 만들었다. 자녀들 중 셋은 독감이 전염되어 그 후 몇 달 만에 죽었다. 그는 두 번째 아내 헴다의 자녀 둘을 질병으로 또 잃었다. 초정통파와 오토만 투르크 당국은 그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예루살렘에서 10년 간의 피와 땀, 눈물의 시간을 보냈지만 히브리어를 모어로 쓰는 유대인들은 너무나도 적었다.

그는 유대 민족을 위한 히브리어 사전을 만들기 위해 차질에 차질을 겪었다. 그의 가족은 극도로 비참한 가난과 결핍 가운데 살았다. 그의 생애 마지막 7년만은 예외였다. 이 모든 것은 그가 겪은 갈등과 실망의 맛보기에 불과하다.

그로 하여금 그토록 참담한 불행을 마주해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토록 영웅적인 삶을 살도록 그에게 힘을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비전, 바로 비전이다.

그는 수년 전에 가족들과도 이것을 나눴다.

“나는 비전을 보았어. 거기서 나는 동유럽의 끔찍히 추운 겨울을 빠져나와 여리고 옆 요르단 강길로 옮겨졌어. 거길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건넜지. 내가 물을 향해 걷는데, 내 귓가에 이런 음성이 들렸어. ‘이스라엘의 구속이 그 땅과 그 언어에 있다!’”

이런 비전을 하나님 말고 누가 주실 수 있었을까?

주요 출처: <예언의 성취,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손자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저, 2008 / <선지자의 언어,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의 생애> 로버트 세인트 존 저, 1952 / https://goo.gl/MVmMUK; https://goo.gl/8r29uN

다음 회: 에필로그

이스라엘보다 더 “합법적”인 나라는 없다!

물론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이스라엘이 불법적인 나라라고 주장하기에 산 레모의 국제적으로 합법적인 결의안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후 미국 의회는 국제 연맹과 함께 1922년 6월 30일에 “유대 민족을 위한 민족적 집을 팔레스타인에 건설하는 것에 찬성하는” 공동 결의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아랍의 지속적인 폭력 때문에 1947년 11월 29일이 되어서야 국제 연합 UN은 옛 이스라엘 땅에 유대 국가를 세우는 일을 투표에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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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프에렡 예슈아의 유월절 아웃리치

0419 - Passover Tiferet Yeshua

 

거의 모든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 유대 절기는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정성 들인 절기 음식을 둘러싸고 앉은 가족 및 친구들과 연결되는 시간이다. 종교적이지 않다고 하는 많은 이스라엘인들의 삶에서 절기는 문화적 시금석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대인의 역사와 정체성에 깊게 연결시켜 주는, 수천년 묵은 성경에서 위임한 예식들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연중 모든 유대 절기들 가운데 유월절은 단연 가장 보편적으로 지켜지는 절기다. 한편, 유월절 세데르는 유대적 경험의 정수다. 풍성한 음식을 두고 가족들이 교제하며 축복을 나눈다. 또 한편, 식사의 각 요소가 출애굽 이야기의 단면들을 다시 들려주는 가운데, 깊은 성경적 의미가 넘치도록 나타난다.

예슈아를 믿는 이들에게 유월절은 하물며 더 깊은 영적 의미를 갖는다. 우리 주 예슈아께서 유월절 어린양이시며, 유월절 세데르는 최후의 만찬이요 세데르 만찬의 전통적 요소들은 메시아 예슈아를 놀랍도록 의미심장하게 설명해준다. 매년 티프에렡 예슈아는 참석자들에게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유월절 세데르를 개최한다. 참석자들은 최소한의 비용을 내는데, 유월절 만찬을 직접 갖는 것이 재정적으로 부담되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이 된다. 믿는 이들에게는 영적 가족들과 절기를 함께 보내고, 절기를 기념할 장소가 없는 이들에게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 오는 많은 안 믿는 친구 및 가족들에게는, 믿는 이들과 연결될 좋은 기회고, 그들이 알고 사랑하는 전통적 세데르의 맥락에서 복음을 들을 굉장한 기회다! 매년 우리는 80~90명의 사람들을 받는데, 이들 35% 가량이 비신자다. 그중 대부분은 처음으로 복음을 듣고 있다. 유대 민족의 가장 걸출한 절기를 통해 유대 민족의 메시아를 나눌 수 있는 놀라운 기회다!

타마르는 예배 인도자이자, 티프에렡 예슈아 길 아프리아트 목사의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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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선거누가 이스라엘의 새로운 총리가 될 것인가?

0419 - Elections 2019

 

4월 9일, 이스라엘은 총리를 선출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는 최근 뇌물, 사기, 배임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자신에 대해서는 언론 보도를 긍정적으로 하고 정치적 상대자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도하게 하기 위해 특혜를 베풀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친구와 친척들에게 사업에 특혜를 준 대가로 수십만 셰켈 어치의 시가와 샴페인을 받았다고도 한다. 하지만 유죄 선고가 되려면 몇 달이 남았고, 혐의는 확실해 보이지도 않는다.

네타냐후의 현 연립 정부는 주로 정통파와 초정통파 유대교 당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보수파들은 유대-사마리아가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에게 약속해 주신 땅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 한가운데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또 굉장히 반메시아닉으로, 유대인 신자들을 사업체에서 괴롭히는 데에 많은 시간과 세금을 들인다. 특히 이스라엘로 이민하려는 신자들의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전세계 모든 유대인들에게는 이스라엘로 이민 와서 시민권을 받을 자동적 권리가 있다. 예슈아를 믿는 이들만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약 백만의 인구를 갖고 있는 초정통파들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경제를 끌어내리고 있다. 네타냐후의 연정 파트너가 되어 주는 대신에 엄청난 액수의 세금을 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돈을 이용해 스스로 수당을 지급한다. 왜냐하면 정통파 남성의 약 50%만 일을 하고, 나머지는 평생 예쉬바에서 랍비 문학을 공부하며 지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인구는 늘어가고만 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은 정통파가 엄청난 액수의 돈을 취해가고 있는 것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느끼는데, 이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반면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 밖의 세계를 다루는 데에 네타냐후처럼 탁월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방에 적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스라엘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네타냐후는 놀라운 일들을 해냈다.

네타냐후가 저지른 형태의 부패가 안타깝게도 이곳 정치인들 사이에 일반적으로 흔하다고 본다. 모두가 언론에 좋게 비춰지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들이 친구 등에게 혜택을 베풀어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언론은 좌파에 기대고, 미디어도 좌파에 기대므로 네타냐후의 죄는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다. 상당히 많은 이스라엘 국민들이 매일처럼 미디어에 등장하는 그의 부패 이야기를 듣는 데에 질렸다.

중도좌파 당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존경하며, 군대에서 막 나온 베니 간츠 장군이 있다. 사실 이스라엘인들은 IDF의 가치와 정직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간츠는 잘 알려진 언론인 출신 중도좌파 야이르 라피드와 함께 손을 잡고 청백당을 만들었다. 아무도 간츠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만드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는 힌트를 주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정상적인” 좌파는 미국이나 유럽의 극단 좌파 신조와는 거리가 멀다.)

청백당은 비정통파인 국민들, 예컨대 메시아닉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자유를 더 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정통파는 야이르 라피드를 싫어하는데, 왜냐하면 그가 반정통파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이 사람들 둘다 깨끗하고 정직하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간츠는 알려진 바가 없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산적한 과제들은 끝이 없다. 이스라엘을 쓸어버리겠다고 공언한 이란이 어떻게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인가? 이스라엘 국가를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하마스와 PA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유대주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미 55,000명의 유대인들이 프랑스를 떠나 이스라엘로 왔고, 유대 국가는 20만 명을 추가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재레드 쿠슈너가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분할하고 서안 지구는 팔레스타인에게 넘길 것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헤즈볼라가 전쟁을 다시 일으키기로 한다면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미국이 골란 고원이 이스라엘 것이라고 인정하도록 (토라에서 말씀하는 이스라엘의 유산)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더 많은 아랍과 아프리카 국가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합법 국가로 인정하도록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쩌면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는 유대-사마리아에 대해 이스라엘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일 것이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은 82세에 병들어 있다.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서안 지구에서 선거가 열린다면, 하마스가 가자에서처럼 승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팔레스타인은 70년 내내 “NO”라고 해왔기에, 이스라엘인들 중에 텔아비브, 하이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예루살렘 내부에 가자 II가 등장하는 것을 두고 보고 있을 사람은 얼마 없다. 벤구리온 국제 공항은 미사일의 쉬운 표적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초점을 맞춘다. 주님께서는 유대 민족을 당신께로 돌이키시고, 그들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실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또 4천년 전에 우리에게 약속하신 땅을 모두 돌려주실 것이다.

현재 두 주요 정당은 여론 조사상 막상막하다. 주님, 이스라엘에 하늘에서와 같이 주님의 뜻이 이뤄지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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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사랑하는 마오즈 동역자 분들께,

예슈아의 죽음과 부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영원한 생명을 기억하는 유월절을 아주 기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 놀라운 시즌에 티프에렡 예슈아가 이 텔아비브 도시의 소망 없는 방랑자와 중독자, 노숙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약 25년 전, 티프에렡 예슈아를 세웠을 때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비전은 히브리어를 쓰는, 성령 충만한 공동체로 아웃리치에 가장 주안점을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이 공동체를 향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신 위대한 일들을 가히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저희 지도자 길과 타마르 아프리아트 목사님은 이 지역 공동체를 성령의 기름 부으심 있는, 여러 방법으로 키워가고 있습니다. “죄악의 도시”로 알려진 텔아비브는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할 비옥한 땅입니다.

또 저희가 개인적으로 기뻐하는 부분은 약 35년 전에 이스라엘인으로 거의 맨 처음 믿음에 이른 모티 코헨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려운 배경을 가진 10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다가갈 은사를 가진 티프에렡 예슈아의 장로가 되었고, 이곳의 많은 새 신자들에게 굉장한 본보기이자 멘토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텔아비브를 먹이라” 프로젝트의 설립자이자 조직자입니다.

이 공동체의 리더십  팀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젊은이들이 텔아비브 거리의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꾸준히 나아가, 그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전하며, 예슈아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점은 놀랍습니다.

모티와 그의 자원 봉사자 팀은 매달 400명의 어려운 이들을 먹입니다. 모티는 천 명을 먹이기를 갈망합니다!

한 끼가 2천원이니까, 2만원이면 열 명이 먹을 수 있습니다. 20만원이면 백 명이 먹을 수 있습니다. 소망을 잃어버린 영혼들을 먹이는 일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그 아들 예슈아의 사랑을 유대 민족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계시된 계획에 속한 것입니다.

저희가 텔아비브의 배고프고 궁핍한 이들에게 소망과 생명, 영원한 기쁨을 전할 때 여러분도 예슈아의 손이 되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위하여,

아리 & 쉬라 소르코람

추신. 텔아비브를 먹이는 모티를 돕기 위해, 이번 달에 2천원, 2만원, 20만원의 헌금을 추가로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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