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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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9 2019-06-04T07:00:55+00:00

달을 향해 쏘아올린 이스라엘!

0619 - Top - Beresheet Selfie

베레쉬트는 달 표면으로의 하강을 시작하면서 셀카를 찍었다.

 

야리브 바쉬는 성공이라는 틀에 잘 맞은 적이 없었다. 그는 공립 고등학교를 보통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그건 컴퓨터 공학을 전공으로 대학교 학위를 미리 따느라 바빴던 탓이 크다. 당시 IDF는 최고의 지성들 – 전략적 군사 아이디어들을 처리하는 곳에 있어야 할 이들 -은 서류상으로 찾아내기 어렵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군대는 그를 정예 전투부대에 보냈다.

그에겐 꽤나 괜찮았다. 안 그래도 그는 위험을 즐기는 청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터사이클, 스노우보드 등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했고, 스스로 만든 호버크래프트를 타고 절벽에서 뛰어내렸을 때도 얼마나 위험한지는 전혀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다. “군대는 제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도록 도와줬어요. 제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을 넘어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줬죠.” 그는 말했다.

제대했을 때 그는 정부의 한 연구개발 부처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의 연간 프로젝트 중 하나는 전혀 불필요한 발명품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단순히 창의적 사고를 독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야리브는 플라스틱으로 우주 모퉁이까지 갈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사진을 찍어 최초의 이스라엘 우주선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날 밤, 야리브는 친구를 찾아가 이 생각을 나눴다. 친구는 2012년까지 달에 우주선을 띄우는 데에 성공하는 사기업에 2천만 달러를 지급하는 구글의 루나 X 챌린지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달 표면에서 조종하여 사진을 보내오면 되는 것이었다. 야리브에겐 운명처럼 느껴졌고, 그날 밤에 그는 spaceil.com이라는 도메인을 구매했다 (IL은 이스라엘의 공식 약자다). 다음 날 그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달에 가고 싶은 사람?” 많은 이들이 웃었다. 두 친구 요나탄 다마리와 크피르 위네트라웁은 함께 하자고 했다.

셋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이스라엘 항공우주국장을 만나러 갔다. “2012년까지 달에 착륙하진 못할 거에요. 우주선은 여러분이 여기 그린 것보다 커야 하고, 여러분이 제시한 8백만 달러보다 많은 돈이 들 거에요. 하지만 마음에 듭니다.” 프레젠테이션을 본 국장은 대답했다. 그의 모든 이야기는 후에 맞은 것으로 증명되었고, 그는 SpaceIL을 발사시키는 데에 요긴한 역할을 하게 된다.

몇 달 내에 셋은 말 그대로 “달을 향해 쏘아올리도록” 이들을 도와줄 여러 명의 열정적 투자자들을 만나게 된다. “베레쉬트 (히브리어로 ‘창세기’)”라는 이름의 달 탐사선은 결국 1억 달러가 들게 되지만, 그래도 역사상 달에 간 탐사선 중 비교불가하게 최소 비용을 들인 경우다.

0619 - Yariv Bash

(From Yariv Bash’s Facebook Page)

한두 가지 차질

전 세계 팀들의 관심 때문에 구글의 루나 X 챌린지는 본래의 2012년 기한에서 여러 차례 연장이 되게 된다. SpaceIL은 이스라엘 유일의 참가 팀이었고, 결승에 오른 5팀 중의 하나였으며 최초로 우주선을 발사시킨 팀이었다. 팀들의 주목할 만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2018년 기한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하고 2천만 달러의 상금은 아무도 받지 못하게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SpaceIL은 이것을 부차적인 실망 거리로만 여겼다. 이들은 달을 향한 자신들의 미션을 이어갔다.

2016년 여름에 벌써 더 큰 한 방이 다가오는데, 항상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한 야리브가 프랑스에 친구들과 스노우보드를 타러 여행갔던 것이다. 눈이 높이 쌓인 슬로프를 내려가다가 그는 눈 밑의 바위를 너무 늦게 발견하여 피하지 못했다. 뛰어 넘으려다가 바위 위에 딱 착지했다, 허리로. 너무나 즉각적으로 절단이 나서, 그는 쓸 수 있는 한쪽 팔을 가지고 하체가 아직 달려있는지 직접 만져봐야 했다.

야리브는 응급 수술을 위해 급히 후송되었고, 우주 프로젝트에 관여되어 있는 모든 이들 – 투자자, 동업자, 프로젝트 자원자들 – 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야리브가 의식이 반쯤 있는 상태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내가 가족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였다.

마침내 의식을 되찾았을 때 의사들은 그가 다시 걷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는 모든 게 깨어진 기분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곁엔 아내가 있었다. “괜찮을 거야. 로 카라 클룸 (히브리어로 ‘아무것도 아니야’).” 아내는 말했다.

수개월 동안 재활을 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왜 함께 농구장에서 뛰지 못하는지 설명을 해야 할 테지만 야리브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을 뿜어내고 있었다.

일하러 돌아간 날 야리브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달에 먼저 착륙하고 그 다음에 다리를 고치자.”

0619 - Beresheet mission timeline

작전 시간표:  발사 / 400K km 궤도 진입 / 착륙 / 달 포착  (SpaceIL.com)

 

직선적 사고를 벗어버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잘 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나라가 큰 돈 들여 하는 일을 더 싸게 하는 법을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부자 나라의 고장난 탱크가 완전히 갖춰진 차고에서 수백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수리될 때, 이스라엘 탱크는 클립과 초강력 본드면 임시변통이 된다고 농담을 한다. 약간 과장이긴 하지만, 이스라엘의 제한된 자원과 제한된 생활 및 업무 공간은 항상 창의적 사고를 하여 일을 더 싸고 더 작게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베레쉬트 프로젝트 이전 모든 달 탐사선은 지구에서 달까지 직행했다. 그래서 연료를 담을 거대한 캐번 등 특정한 방식으로 우주선을 만들어야만 했다. 베레쉬트는 더 우회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바로 타원형 궤도다. 지구의 궤도를 돌면서 시작하되 매번 우주 안으로 조금씩만 더 들어갈 정도의 연료를 사용하고 지구와 달 중력의 궤도를 선회하는 힘으로 하여금 나머지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일단 타원형 궤도가 충분히 멀리 벗어나고 나면, 엔지니어들을 달의 중력을 잡아 착륙하기에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달의 궤도를 도는 것이었다. 이 과정은 약 두 달이 걸렸다.

0619 - Beresheet Costumes

지난 부림절 기간에 아이들이 느낀 흥분감이 증거로 남았다. 이렇게 SpaceIL 로고가 새겨진 의상들이 SNS 상에 떴을 때 우주선은 이미 궤도권 안에 있었다.

우리가 아닌 그들에 대한 것

연유는 모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성공보다 달콤한 것은 내 곁의 다른 사람들을 나의 성공에 동참하게 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다. SpaceIL은 단순히 달의 궤도를 선회한 7번째 국가, 달에 착륙한 4번째 국가로 역사책에 기록되기 위한 목표에 초점을 둔 사적인 프로젝트가 아니었다.이 프로젝트는 감히 말하자면, 그저 유명 팝스타가 되는 것을 넘어서는 꿈을 꾸도록 한 세대에 영감을 주는 것이었다. SpaceIL은 “아폴로 효과”를 다시 일으키고 싶었던 것이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 STEM (과학, 기술, 공학, 수학) 직종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GPS에서 보철용 팔다리, 신장 투석기, 화재 경보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아폴로 11호를 위해 개발된 기술의 직접적 결과로 발명된 것이었다. 그러나 최고의 승자는 새롭게 주어진 기술을 사용할 것에 신난 소비자들과 숙련된 일꾼들의 유입으로 혜택을 본 미국 경제였다. 이 기간 동안 개발과 발명의 홍수가 너무나 강력하여, 아폴로 효과라는 말로 이 현상을 명명하게 된 것이다.

2011년, SpaceIL은 공식 비영리 기구로 조직되었고,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개발 예산에 아이들 교육비도 포함되었다. 우주선이 발사되었을 때에는 국가 전시회를 통해 이스라엘의 백만에 가까운 어린이와 지역 학교를 방문한 자원 봉사자들에게 알려진 상태였다. 이들이 두 달 후 달 착륙을 시도할 때에는 전국이 지켜보고 있었다.

0619 - Beresheet lego set

야리브에게 마비는 개인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지만, 장애 있는 아이들에겐 더 꿈을 꿀 수 있는 영감이 되었을 뿐이다. 현재 구상 단계인 베레쉬트 레고 세트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도 포함되었다.

 

착륙 중 충돌

최근 구글은 상업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드론 서비스를 개시한 최초의 기업임을 자처했다. 하지만 구글이 직접 구글 검색을 해봤다면, 야리브의 회사 플라이트렉스가 이미 아이슬랜드에서 2년간 그 서비스를 제공해왔음을 알았을 것이다. 사실, 플라이트렉스가 드론 시스템에 사용한 기술 일부는 우주선을 짓는 데에 사용되기도 했다. 이것이 야리브에게 원격 비행 물체와 소통하는 데에 있어 막대한 경험으로 남았다.

하지만 플라이트렉스 상업용 드론은 원격으로 착륙하지 못했다. 구매 상품을 내려주고 돌아오도록 설계되어 있다. SpaceIL에 있어 가장 큰 과제는 착륙이었다. 달에 가보지 않고는 우주선의 착륙을 제대로 실험해 볼 방도가 없었던 탓이 크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 우주선을 그토록 먼 거리에서 조종할 때, “실시간으로” 소통할 능력은 있을 수 없다. 어떤 명령이라도 우주선이 수신하기까지는 수분이 걸리는데, 이는 긴급 명령을 수신했을 때는 이미 무의미해진 시점이리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착륙을 위해, 이들은 완전 자동화된 프로그램을 채택하기로 했다. 고정된 명령문 세트와 놀랍도록 제한된 연료를 가지고, 베레쉬트는 이상한 자기장으로 알려진 달의 한 부분에 착륙했다. 궤도를 탈출해 하강을 시작해야 할 순간에, 왜였는지 메인 엔진이 꺼졌다. 다시 켜라는 신호가 닿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모든 소통이 상실되었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두 알고 있었다.

0619 - Beresheet Moon picutre베레쉬트 2.0

실망스러운 발표 이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수십 명이 모든 상황 전개를 지켜보고 있던 메인 홀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우리는 달까지 갔습니다. 우리가 바라던 방식이 아니었을 뿐이죠.” 네타냐후는 일어나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첫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또 하는 거에요.”

24시간도 되지 않아, SpaceIL은 카메라 앞에 서서 베레쉬트 2.0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들은 또 다른 시도를 향한 결의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우주선 이름을 “후츠파”라고 했으면 더 좋았겠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뻔뻔함이나 대담함을 뜻하는 단어다. 미국, 러시아, 중국이라는 강대국만 성취한 일들을 이스라엘이 하려고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나서 또 도전하겠다는 것은 놀라운 투지다.

이스라엘이 달을 향해 발사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요점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을 시도하는 데에 익숙한 민족의 많은 예의 하나일 뿐이다. 그 민족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들의 축복을 세상과 공유하기를 기뻐하는, 축복 받은 민족의 또 하나의 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항상 크신 하나님의 작은 백성이지 않았는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 7:7

 

0619 - Shani Ferguson

 

샤니 퍼거슨은 아리와 쉬라 소르코 람 부부의 딸, 코비 퍼거슨은 사위다.

코비와 샤니는 3년의 기간을 두고 마오즈 이스라엘의 대표로 인수인계를 받고 있다.

부부는 3~14세의 다섯 자녀와 함께 예루살렘 근방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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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 카찌르 청소년 캠프의 추수

0619 - Katzir camp - top

 

 

감동한 요세프는 침묵하는 10대들 앞에서 마음을 쏟아냈다.  그의 말은 한참 닳은 돌 위로 흐르는 빠른 시냇물처럼 아연한 젊은이들 위로 휘몰아쳤다.  그는 그들에게 주의를 빼앗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그들의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라고 권면하였다. 그러나 그의 어조에는 비난의 투가 없었다.  예슈아 신앙을 의심하고 도덕적 타협을 하며 군대에서 복무하는 젊은 이스라엘인으로서 자신이 겪은 갈등을 바탕으로 그는 말했다.

이제 서른인 요세프는 10대 동안 우리의 초기 캠프에 주기적으로 함께 했다. 청소년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오늘날 흔히들 SNS의 거품 속에 살고 있는 다음 세대에 대한 염려로 그는 화산처럼 열정을 분출시켰다. 요세프는 믿는 가정에서 자란 이들에 대한 부담이 있다. 나는 그들 안에 불을 밝히고자 하는 갈망을 느꼈다. 주님을 더 알고,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을 알리려는 갈망이 불타오르기를.

시간이 멈췄다. 아이들은 눈을 깜빡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요세프는 메시지를 마치게 됐다. 청소년들에게 기도를 받으라고, 모든 것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데에 실제적이 되라고 강권하자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왔다. 필수 사항은 없었다. 점수가 매겨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하나하나 주님의 영의 강권하심을 받았다. 나는 14~18세의 이스라엘 청소년들을 바라보기를 멈출 수 없었다. 10대를 보낸지 얼마 되지 않은 상담가들은 반응하는 이들의 심령을 감쌌다. 이번 2019년 봄 유월절 캠프에서 3일 동안 커진 영적 모멘텀의 크레셴도가 이런 것이었다. 얼마나 장관이었던지!

0619 - Yosef Katzir

카찌르 청소년 리더 요세프

수년 전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영화가 나왔다. 한 소년이 마을을 변화시키기 위한 학교 프로젝트를 만드는 내용이다. 세 사람을 위해 선한 일을 하면, 그들이 또 다른 세 사람을 위한 선한 일을 하리라는 개념이었다. 나는 요세프의 메시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말이 떠올랐다. 15년 전, 그는 카찌르 캠프에서 하나님을 체험했고 그의 삶은 바뀌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체험을 나누고, 다음 세대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엶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청소년 행사의 열매는 우리 목전에서 배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이스라엘에 살고 히브리어를 쓰는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겐 이스라엘 재탄생의 드라마를 이해하는, 전세계 형제자매들의 도움과 참여가 필요하다. 우리가 민족으로서 물리적으로 회복된 것은 영적 회복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 옛 선지자들은 유대 민족이 우리 땅에 다시 심겨진 후 이 마지막 때에 회복/부흥이 있을 것을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그들은 재림 이전 이 마지막 성령의 부으심을 부르짖을 것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사야는 전세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이스라엘이 마지막 때에 메시아께 나아오도록 하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명확한 기대를 표했다.

이번 8월에 우리는 이스라엘 전국의 40여개 공동체에서 젊은이들을 또 한번 모을 것이다. 한주 내내 청소년들이 인도하는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듣는 도전적 메시지, 소그룹 토론과 훈련된 상담가와의 기도, 그리고 사회의 어려운 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섬김 프로젝트 등 꽉찬 프로그램으로 보낼 것이다. 히브리 선지자들과 예슈아께서도 친히 말씀하신 이스라엘 메시아닉 청소년들의 추수 (카찌르)를 준비하는 일에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는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아돈 카찌르)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에이탄 쉬쉬코프는 카찌르의 설립자이자 대표자이며, 자비의? 공동체 네트워크의 설립자다

0619 - Katzir - Prayer and worship

 

내 인생을 구한 카찌르!

0619 - Chaim내 이름은 하임이다. 생명이라는 뜻의 이름이지만, 난 죽음을 향해가고 있었다. 나는 텔아비브 근교의 거친 마을에서 목회자 아들로 자랐다. 술 마시고 싸우고, 클럽에 다니는 것이 청소년기 내 삶의 큰 부분이었다. 나는 내 마음 속의 구멍을 채우고자 했다. 나를 받아줄 무언가, 혹은 누군가로 채우고자 했던 구멍.

그러다가 내 인생 최악의 날이 닥쳤다. 나는 다섯 가지 종류의 보드카를 마시고, 그렇게 취한 상태에서 친구와 싸우다가 소파를 발로 차 발이 부러졌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일어난 일 때문에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내 베스트프렌드가 카찌르 청소년 캠프에 오라고 설득한 것이었다. 첫 날은 숙취 상태였고, 뭘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저녁 모임 때 뭔가 달랐다. 나는 말씀도 듣지 않고 찬양 시간에 한 마디도 따라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나는 서 있었고 예배는 거의 끝나가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랑이 나를 찾아와 둘러싼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완전한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난 완전한 평안 가운데 있었다.

즉각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부르고 계심을 알았다. 동시에 내 친구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그는 홀의 반대편에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고, 둘 다 무슨 일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100%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걸어나가 예슈아께 삶을 드렸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돌아서서 기도하며, 주님의 품 안으로 걸어갔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카찌르는 정말 내 삶을 구원했다!

(주: 하임은 현재 카찌르의 캠프 디렉터 중 한 명으로, 오늘날 이스라엘 청소년들의 삶에 투자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증오로 가득했던 나!

0619 - Joel나는 17살이었던 2006년에 처음으로 캠프에 참여했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자 갈망하는 10대였지만, 우리 집엔 문제가 많았다. 하나님께서는 카찌르 캠프를 통해 내가 주님과 더 깊이 들어가게 하셨고, 젊은 신자로서 내 신앙 생활을 정말 튼튼해졌다.

다음 해, 나는 캠프의 소그룹 리더로 섬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수락은 했지만, 내 영혼은 다쳐 있었다. 18살이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이었고, 어머니와 나를 틈만 나면 후려 갈기려 덤볐다. 실제로 나는 쓴 뿌리가 있어,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가득했다. 나는 하나님을 갈망했지만, 내 증오는 하나님과 내 신앙 생활에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캠프의 저녁 세션 중에 나는 하나님을 강력히 만나는 체험을 했다. 그 밤에 주님께서 오셔서 나를 증오로부터 자유롭게 하셨고, 용서라는 새 여정을 시작하도록 도와주셨다. 너무나 강력했다. 그때만큼이나 지금까지도 생생히 느껴진다. 그 날 내 마음 속에서 시작된 여정이 아니었다면 지금 내가 어디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받을 수 있었고, 거기서 모든 변화가 시작되었다.

현재 나는 캠프를 위한 리더십 팀에서 섬기고 있다. 한 세대를 터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데에 나는 영원히 감사 드린다. 카찌르에서 리더로 수년 간 섬기며, 나는 귀중한 기술들을 배웠고 청소년 사역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됐다. 나는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직접 보았지만, 내가 체험한 것처럼 사실 섬기러 오는 청년 리더들이 더 많은 변화를 입는다.

나는 너무나 많은 청소년들이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로 캠프에 왔다가 주님과 사랑에 빠져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

(주: 카찌르 캠프에서 한 청소년은 요엘이 아버지를 용서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의 상황도 거의 똑같았다. 그 아이는 쓴 뿌리로부터 구원 얻은 요엘과 함께 기도했고, 사랑의 도구가 되어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

 

지난 봄 캠프 때 카찌르는 이스라엘의 청소년들을 아름다운 골란 고원 평지로 인도했다.

청소년들이 하나님께 가깝게 자라갈 수 있는 기회, 우리가 청소년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

0619 - Katzir Golan Heights h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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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백성들이 오랜 유산을 되찾다-골란 고원

0619 - Golan heights

Photo: APimages

이스라엘로 처음 이민 온 1967년 10월, 나는 골란 고원 기슭의 한 키부츠에 사는 가족을 방문했다. 그 집 아버지는 자신과 아들이 집 바로 밖에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시리아 군인들이 골란 고원 비탈 아래 있는 그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질주했고, 안전히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독립 이래 19년 동안 그들은 언제 어디서 키부츠에 총탄이 빗발 칠지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6일 전쟁이 모든 걸 바꿔 놓았다.

1967년 6월, 수백 대의 시리아 탱크 군단이 골란 고원을 밀고 내려왔다. 시리아는 갈릴리를 마주한 고원에 민간인들이 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야 이스라엘을 멸하려는 시리아의 군사적 목표에 민간의 방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60km가 넘는 험준한 절벽은 해발 2,814m에 이르는데, 빽빽한 지뢰밭 뒤에 요새, 참호, 콘크리트 벙커의 뚫을 수 없는 보호망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몇 년 앞서 이스라엘의 스파이였던 엘리 코헨은 시리아 국방장관의 수석보좌관이 되었다. 해 아래 앉아있는 병사들에게 동정을 표하며 코헨은 시리아 군인들에게 그늘이 좀 생기도록 벙커 옆에 나무를 심으라고 지시했다.

0619 - Eli Cohen

이스라엘의 스파이 엘리 코헨의 첩보는 골란 고원 산비탈 “난공불락의 요새”를 이틀만에 올라갈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줬다.

게다가 코헨은 3개의 벙커와 박격포 축차방어선을 만들려는 시리아의 비밀 계획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보통 단 한 개의 방어선만 마주칠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엘리 코헨은 6일 전쟁 2년 전에 다마스쿠스에서 붙잡혀 공개 처형을 당했지만, 나무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각 벙커의 정확한 위치를 표시해주고 있었다!  수년 전에 코헨이 시리아 병사들에게 전략적으로 명령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거의 모든 벙커를 정확하게 쓰러뜨리고 다음 날까지 골란 고원을 점령할 수 있었다.

엘리 코헨이 수집한 첩보는 이스라엘이 이틀 동안 기적적으로 고원을 점령한 데에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그는 이스라엘의 국가적 영웅이다.

3,500년 전에

골란 고원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3,5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바산이라고 불렸던) 이 높은 고원을 정복한 것은 사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키가 411cm나 되는 거인 옥왕을 죽였을 때였다. 모세는 바산을 요셉의 자손 [여호수아 22:7] 인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다. 거의 1800 km2에 이르는 땅이다.

여호수아서 [여호수아 13:30] 는 또한 그들이 60개의 도시를 차지했다고 언급하는데, 후에 벽이 쳐진 큰 도시들과 청동 문살이 있는 관문들로 묘사되었다 [열왕기상 4:13]. 그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 사람에게 바산의 열세 성읍이 주어졌다[역대상 6:62].

수백년 후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의 남은 자를 예루살렘에 모았을 때, 에스라는 강단에 올라가 율법서를 낭독했다. 그 다음 레위인들이 이 쫓겨났다가 돌아온 자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이끌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자손들에게 주신 땅을 인해 그분께 감사했다 [느헤미야 9:22].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그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그들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

그러나 골란에서의 이스라엘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카비 때와 예슈아의 생애 중에도 유대인들은 골란 고원에서 살며 일했다. 제2성전이 파괴된 뒤, 유대 민족은 또 다시 쫓겨났다. 하지만 7세기까지 골란에서 계속 산 남은 자들이 여전히 있었다.

골란 고원 기슭에 있는 카쯔린 회당은 가보면 아주 놀라운 역사적 장소인데, 6세기에 세워졌다가 무슬림들이 정복하여 모스크로 변형시켰다. 사실 그 지역의 또 다른 25개 회당들도 발굴되었다. 이것들은 무슬림이 정복한 7세기까지 사용되었다. 무슬림 통치는 1,600년 이상 이어진 유대인들의 거주를 차단시켰고, 그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의 개종을 강요했다. 그러나 무슬림 정복 이후에도 골란 고원 유대인들의 삶에 대한 일부 증거는 있다.

남은 자들이 골란으로 돌아가다

19세기 말, 시온주의 운동이 수세기 동안의 동면에서 깨어났다. 빠르진 않지만 분명히, 유대인 남은 자들은 유대 국가의 부활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골란 고원은 분명 그들의 역사 유산의 일부로 여겨졌다.

1883년을 시작으로,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와 몇몇 선구자들이 성지로 이주한 시점과 가깝게, 유대 공동체가 골란 고원에 다시 탄생했다. 얼마 후, 바롱 드 로트쉴드가 합법적으로 골란 고원의 150km2 되는 땅을 매입했다! 1차 대전 중과 이후에도, 현대 이스라엘이 세워지기 훨씬 전에, 시온주의 운동은 골란 고원, 헤르몬산, 그리고 이스라엘의 성경적 유산에 속하는 일부 레바논 지역까지 포함해 유대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많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은 유대인 인구를 골란 고원으로 옮기는 일을 권고하고 돕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또 1919년 베르사유 평화 회의에서, 시온주의 운동은 장래 유대 국가가 골란 고원과 레바논 남부와 시리아 서부로 알려진 곳을 포함해야 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미국의 동의 – 그러면 물러나!

그 회의에서 미국은 시온주의 운동이 요구한 이 국경들을 인정했다! 미국은 유대 국가가 헤르몬산의 수원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미에 미국의 제안은 공식적으로 논의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이 논의에서 빠졌기 때문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성지를 나눠, 프랑스가 골란 고원을 갖게 됐다. 그러나 시온주의자들은 유대 국가의 성경적 국경에 대한 제안을 계속해서 홍보했다. 유대인들은 로트쉴드가 매입한 땅에 대한 세금을 프랑스 위임령에 내기도 했다.

베르사유 평화조약에서 영국 통제의 범위 안에 골란이라는 땅이 배제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단체들은 계속해서 골란에 땅을 사려고 시도했다.
약 15년 후, 예호슈아 한킨이라는 한 구매자는 골란에 약 300 km2의 땅을 샀는데 갈릴리 바다 북동쪽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지역 아랍 지도층이 시온주의 운동에서 사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실패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시온주의 단체들은 1946년 프랑스 위임령이 끝나고 시리아에 독립 국가 지위가 주어질 때까지 계속 시도했다. 유대 민족의 그 땅에 대한 소유 권한이 적법하며 그것을 합법적으로 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아는 급히 이 땅들에 대한 소유권을 몰수하여 국유화했다. 그리고 “성스러운 땅”이라고 주장했다.

유대 공동체 리더들은 그러자 시리아에서 법정 공방을 통해 소유권을 지켜내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0619 - Map - Golan

골란 고원은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2,700m가 넘는 높이는 갈릴리와 시리아 간의 최상의 완충지 역할을 한다. 사실, 시리아 내전이 있기까지 이스라엘-시리아 국경은 이스라엘의 모든 국경 가운데 가장 조용한 곳이었다.

 

다비드 벤 구리온이 땅을 요구하다

놀랍게도 유대 민족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 구리온은 이스라엘 땅으로부터 찢겨진 이 영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바꾸지도 않았고, 그곳의 역사적 유대 공동체를 돌이켜 회복하겠다는 그의 열망도 변함 없었다.

1947년 연설에서 벤 구리온은 말했다. “우리는 유대 공동체가 이스라엘 땅의 서쪽 부분을 포괄할 것을 요구한다…[서부 시리아의] 하우란, 바샨과 골란부터 다마스쿠스 남쪽까지다.”

오늘날까지 유대 민족 기금은 골란 고원의 많은 대지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으며, 다마스쿠스와 접경한 하우란까지도 있다. 정착할 목적으로 유대인들이 돈 주고 산 땅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모세, 다윗 왕과 후손들에게 주신 이 오랜 유산을 위해 침략을 해야 했다. “이스라엘의 산들” 일부를 그 본 소유주에게 돌이키기 위해서 말이다.

다음 달에 골란 고원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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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사랑하는 마오즈 동역자 분들께,

이스라엘은 이제 71주년을 맞았습니다.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앞선 모든 선구자들은 거의 떠나갔습니다. 2세대와 3세대가 리더십의 고삐를 붙잡았습니다.

메시아닉 신자들의 공동체는 그보다 조금 늦게 시작됐습니다. 6일 전쟁 이전, 이 땅에 이미 살고 있던 유대인 신자는 불과 몇몇이었습니다. 전쟁 직후, 좀 더 많은 이들이 왔습니다.

이제 강력하고 헌신된 메시아닉 리더들의 2세대가 일어났고, 이들은 메시아닉 운동의 다음 세대 리더들 (즉 10대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중대한 필요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 젊은 리더들은 예슈아를 믿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씨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기껏해야 무관심하고 최악의 경우엔 적대감을 갖는 자기 민족 가운데 살아가는 것 말이죠.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다릅니다. 이제 메시아닉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10대들이 수백 명에 이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때는 거듭난 이스라엘인 부모를 둔 IDF 병사들이 500명 가량 복무한 적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믿음으로 양육된 이 청년들은 새 신자들이 급속히 늘어나는 데에 든든한 기반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수많은 2세대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이 큰 필요성을 깨닫고 믿는 가정의 자녀들에게 다가가야 함을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 공동체가 점점 성장함에 따라 더욱 강력한 메시아닉 유대인 젊은이들의 세대를 무장시키는 길로 자신있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2~3세대 문제에 있어, 이 존귀한 예슈아의 양떼를 섬기고 돌보고, 믿음의 기초를 확실히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없습니다.

이들은 이 세상의 빛이 될 것이며, 이미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빛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입니다!

카찌르는 8월에 약 90명의 이스라엘 청소년들이 일주일 내내 친구들, 상담가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상담가들과 교사들, 리더들과 함께 청소년들은 9월 1일 학교로 돌아가면 몰아칠 세상의 유혹에 맞서 인생을 무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 캠프의 총 비용은 75,000 달러입니다. (아시죠? 이스라엘 물가는 비쌉니다!) 청소년들은 약 ⅓ 정도를 부담하게 됩니다. 나머지 (인당 500 달러 정도)는 여러분과 저희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낼 것입니다. 씨앗을 뿌릴 때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믿음과 기쁨의 추수 (“카찌르”)를 허락하실 것을 아니까요.

일주일 내내 숙식, 교통, 안전, 특별 활동 등 모든 비용, 그리고 하나님과의 시간을 갖는 데에 500 달러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아리 & 쉬라 소르코 람

추신. 500 달러에 이스라엘 청소년 한 명을 보증할 수 있는 굉장한 기회입니다. 전액을 부담하시든지 일부를 부담하시든지, 여러분의 선물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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