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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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8 2018-09-30T07:03:50+02:00

내가 배운 올리브 산에서 믿음으로 기도하는 법

1018 - Shira and Gumbeh

우리가 너무나 사랑하는 굼베라는 이름의 3살짜리 시추 강아지. 우연인지 굼베는 50년 전 미미의 모습과 참 닮았다.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와서 살았던 6개월, 나는 우리 가족의 친구네가 소유한 올리브 산 위의 집 “정원 무덤을 지키는 자”에서 지냈다. 안타깝게도 그 친구는 6일 전쟁에서 전사했다. 내가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불과 4개월 전에 죽은 것이다.

매일 아침 나는 눈을 뜨면 오마르 모스크가 정면으로 보이는 내 방의 큰 창문 셔터를 열었다. 마치 꿈 같았다. 내가 그곳에, 올리브 산에 있다는 게 믿기 어려웠다. 예슈아께서 재림 때 서실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말이다.

1967년, 아랍인들은 요르단 군대가 공격했다가 전혀 예상치 못하게 무너졌다는 것에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들이 기대하던 아랍 무슬림의 승리가 아니라, IDF가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를 완전히 무찌르고 이스라엘의 고토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가자, 골란 고원과 시나이 반도를 불과 6일만에 되찾은 것이었다.

아랍인들이 얼마 안 되는 차를 아주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 모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스라엘 운전자들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아랍인들이 가득한 올리브산을 걸어다니면서도 완전히 안전감을 느꼈다. 그 땐 그랬다. 나는 사실상 올리브산의 일부라고 할 수있는 스코푸스 산을 향해 북쪽으로 걷곤 했다. 1948년 요르단이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을 정복했을 때부터 황폐해졌던 하다싸 병원 주변을 걷곤 했다. 그들은 1948년 이전에 그곳에 살던 유대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파괴했다.

나는 그 산 위에서 사해 방향으로, 그리고 사해를 건너 모압 땅으로 내려다 보기를 아주 좋아했다. 항상 숨이 멎는 듯한 광경이었다. 예루살렘은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물 댄 서쪽과 메마르고 황무한 유대 광야부터 동쪽을 가르는 산의 끝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에서 강아지 미미를 데려왔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미미는 얼마나 귀여웠는지 알이탈리아 항공기 조종사가 나와 미미를 1등석에 초대해줬고, 미미가 내 뒷좌석에 자유롭게 앉아도 좋다고 했다.

1018 - Shira and Mimi in Jerusalem

50년 전 예루살렘에서 찍은 미미의 모습. 얼굴이 안 보인다. 미미의 잘못인지 사진 찍은 사람의 잘못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미미와 나는 올리브산에서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한 번은 미미를 어떤 장대에 묶어놓았는데, 산에서 내게 보이는 시야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카메라 없이 양손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미미를 데리러 갔는데,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온 사방을 뛰어다녔지만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내 강아지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산 위에 앉아 울기 시작했고,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주님, 미미는 지금 저에게 유일한 ‘사람’이에요. 제가 이 낯선 땅에 갖고 있는 전부라고요.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미미가 제게 얼마나 소중한데요. 주님, 근데 누가 제 강아지를 훔쳐갔어요…” 마음이 찢어졌다.

갑자기 나는 일어서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나님께서 미미를 찾아주실 거라고 믿을 거야.” 나는 이렇게 말하며 성령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1967년 당시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슈아라는 그 분의 본명을 아직 쓰지 않았다!) 미미를 찾아주시기를 구합니다. 어디 있는지 아시는 걸 알아요. 주님의 이름으로 제 강아지가 있는 곳으로 인도해주시리라 선포합니다!”

주변을 둘러봤는데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올드 시티 쪽으로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마음을 쏟아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강아지를 찾아다 주실 거라는 믿음을 선포했다.

얼마 가지 않았을 때 나보다 반 블럭 정도 앞서 걷는 청소년이 보였다. 나는 그에게 소리를 쳤고 그는 뒤돌아 보았다. 그에게 다가가서 내 강아지를 보았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질문을 할 만한 아랍어 혹은 히브리어 단어를 하나도 몰랐다.

그래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듯 손을 흔들며 “멍멍멍” 짖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랍 사람이 “멍멍” 소리를 강아지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는 1분 정도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따라오라며 내게 손짓을 했다. 아직 산 위였는데, 그는 이 골목 저 골목을 지나 있는 줄도 몰랐던 번잡한 주택가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내 존재의 모든 성질을 다해 승리를 선포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한 문을 가리키더니 떠났다.

나는 노크를 했다. 대답이 없었다. 계속 두드렸더니 마침내 전통 아랍 복장을 한 여인이 문을 열었다. 나는 “멍멍멍!”하며 작은 동물을 들고 다니는 듯한 손짓을 했다. 그 여인은 못 알아 듣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계속했다. “멍멍멍!” 이제 믿음이 역사하고 있었기에, 나는 기도 응답을 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잠시 사라졌다. 그리고 짜잔! 미미가 나타났다!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반응을 보지도 않고 내 강아지를 데리고 출발했다.

그 순간, 나는 주님께 결코 잊지 못할 교훈을 분명히 배웠다. 주님께서 내 마음에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이다. “네가 그냥 산에 앉아 펑펑 울고 통곡하기만 했다면, 강아지를 다시 찾지 못했을 것이다. 네가 일어서서 믿음으로 바라는 바를 말했을 때,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내가 너를 미미에게로 인도했다.”

그리고 미미는 예루살렘에서 지긋한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았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된다! 이스라엘에서 이 오랜 세월 사역하면서 우리는 믿음과 행동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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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에제르 벤 예후다-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2부 비전의 사람

Ben Yehuda and his wife Devora in 1882, soon after their arrival in Jerusalem.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882년에 벤 예후다와 아내 드보라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가 1881년에 유럽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했을 때, 성지에는 아니 전세계 어느 곳에도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없었다. 일상 회화 히브리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성경과 랍비 문학의 단어들을 읽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엘리에제르는 히브리어에 푹 빠졌다. 더욱이 그는 그것이 유대 민족이 연합하여 고토로 돌아오도록 다시 만드는 도구가 될 것으로 보았다. 더 이상하게도 그는 언어와 땅의 관계를 파악한 세계 유일의 인간인 듯하다.

그는 당시 러시아에서, 비공식적으로 14세 때 자신을 입양한 유복한 집안의 딸 드보라 요나스와 결혼할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23세의 나이에 큰 낙심을 하게 됐으니, 결핵 진단을 받아 꿈이 산산조각나게 된 것이었다. 그는 드보라의 아버지 솔로몬에게 편지를 올려 의사에게 6개월 밖에 살지 못하리라는 진단을 받아 자신이 이제 딸과 결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살며 여생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드보라의 아버지 솔로몬은 엘리에제르의 편지를 받고 최소한 안도를 했다. 모두 가족의 일원으로서 엘리에제르를 사랑했지만, 멀고먼 황무지로 향하는 병자에게 딸을 시집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드보라에게 소식을 전하자 그녀는 들을 생각도 안 했다. 드보라는 엘리에제르와 결혼할 것이라고 부모님에게 말했다! 그녀는 7년을 기다리더라도 그와 결혼할 것이고 아무것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어머니 리브카가 그녀의 곁에 있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버리신 그 땅에, 죽어가는 남자에게로 딸을 보낼 수 있겠는가?

여권 없이 떠나다

놀랍게도 리브카의 아버지는 마침내 묵인했다. 딸이 그 남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본 그는 보내주기로 했다. 진실로 남다른 가족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딸이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 비엔나에 있을 때 에벤에제르를 만나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이틀만에 리브카는 러시아에서 여권 없이 “밀반출”되었다. 엘리에제르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의 일기엔 이런 기록이 남아있다.

“내 질병도, 내 몫인 것 같은 슬픈 인생도 나와 삶을 나누고 싶은 그녀의 갈망을 단념시키지 못했다. 우리 삶은 하나가 되었고 현대 최초의 히브리어를 쓰는 가족이 탄생하게 되었다.”

비엔나에서 만났을 때, 엘리에제르는 자신의 카톨릭 멘토인 차치니코프의 영향으로 젊은 이상주의자였던 자신이 정치 활동가로 삶의 방향을 돌리게 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제 비전의 진실에 확신을 갖게 된 엘리에제르는 자신의 생각들을 글로 써서 출간할 준비가 되었다. 그 당시에도 여전히 공부 중이던 히브리어로 전문을 작성하려는 것이었다.

히브리어만 쓴다!

엘리에제르는 아내가 될 드보라에게 말했다. “2천년 만에 당신은 히브리어를 쓰는 첫 어머니가 될 거에요. 우리 아이는 이 모든 세기를 통틀어 오로지 이 옛 언어의 아름다움만을 듣게 되는 첫 아기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미션이 성공하려면 일정한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드보라에게 한 말은 대략 이랬다.

“사랑하는 드보라, 이제부터는 오로지 히브리어만 할 것을 부탁해야겠어요. 우리의 뒤를 이을 민족의 후손들을 위해 본을 보여야죠. 히브리어는 되살아나야만 해요! 문학 연습을 위한 언어에 그쳐선 절대 안 됩니다! 우리 가정은 히브리어로 꾸려나갈 거에요. 아이들도 히브리어로 양육하고 히브리어로 사랑하고, 그리고 우리가 싸우고 다투더라도 히브리어로 그래야만 합니다.”

드보라는 대답했다. “하지만 여보, 난 히브리어를 정말 몰라요!” 엘리에제르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면 잘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히브리어로 침묵해요.” 아직 유럽이었던 그 자리에서 엘리에제르는 드보라에게 히브리 단어들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무”, “창문”, 저것은 “길” “등불”이라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1881년 가을, 이 신혼 부부는 엘리에제르의 폴란드 친구 차치니코프와 함께 이집트에 들러 결혼식 주례를 해줄 랍비를 찾는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했는데, 당시 인구 2만 5천 명 중 절반 이상이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도시의 완전히 불결하고 비참한 모습에 압도되었다. 하수도가 다 열려 있어 사방에서 악취가 났다. 그리고 부부는 실질적으로 무일푼이었다. 하지만 드보라는 남편만큼이나 독특한 사람이었다.

선지자들의 열정은 그녀의 열정이었다. 이제 엘리에제르의 아내가 된 그녀는 곧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갈망을 이뤄줄 것이었다. 현대 최초로 히브리어를 쓰는 어머니가 되리라는 말이다. 그녀는 많은 아이를 낳을 것이고 그들은 약 2천년 만에 최초로 나면서부터 히브리어를 쓰는 아이들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기적 같은 만남

Dov Frumkin, editor of "Havatzelet" (The Lily) in Jerusalem who offered a job to Ben Yehuda.

벤 예후다에게 일자리를 제안한 예루살렘 <하바쩰레트 (백합)>의 편집장 도브 프룸킨

유럽에서 쓰여진 히브리어 기고문들 여럿이 예루살렘의 한 저널에 실렸기 때문에, 발행인인 도브 프룸킨과 그 가족은 엘리에제르 부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연한” 일들 중 프룸킨은 자신의 신문 판촉을 위해 6개월간 러시아로 떠난다고 말하며 엘리에제르에게 부편집장 직책을 제안했다. 그는 한 달에 5달러 가량의 월급을 받기로 했다.

엘리에제르는 그 순간의 대박으로 가족을 먹여살리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는 말했다. “해방의 소리를 울리기 위해 나팔이 입술에 대어졌다.” 그리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의 땅과 언어를 수복하기 위한 전쟁을 촉구한다.” 이것은 그의 일생의 과업이 될 것이었다.

즉시로 그는 자신의 목표에 가장 큰 걸림돌이 예루살렘의 조그마한 종교인 집단 가운데 있는 극단적 소외임을 인식했다. 그는 이 최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그들을 연합시키는 일을 기꺼이 감당하기로 했다. 스스로 유대교인이 되기로 한 것이었다!

정통파 유대교로 들어선 엘리에제르와 드보라

많은 유대교 전통이 구식이며 일부는 토라나 유대교와 무관하다는 걸 사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엘리에제르와 드보라는 토라의 멍에를 지고 집에서 코셔와 안식일, 절기들을 지키고 회당에 다니며 유대교 전통을 준수했다. 귀밑머리와 긴 턱수염을 길렀다. 아침마다 탈리트와 테필린을 착용하고 기도했다. 그는 종교적 수련이 모든 유대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요인이라 생각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을 하나되게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고 할 것이었다!

그러나! 정통파 유대교인들은 벤 예후다를 이교도요 유대 민족의 원수로 보았다. 그가 성경의 거룩한 언어를 더럽혀 일상 언어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쓰레기 좀 치워!”라고 할 때 이 언어를 쓰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평생 엘리에제르의 열렬하고 과격한 원수가 되었다.

벤 예후다 가족은 처음으로 세를 얻은 집에 들어갔다. 그곳은 통곡의 벽을 향하고 있었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발목까지 오는 높이의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더러운 뜰을 7개나 지나야 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려면 밧줄로 만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예루살렘에서 홀로

더 힘들었던 것은 부부에게 예루살렘에 친구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잉글랜드 출신으로 유대 자선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마이클 파인즈 부부가 있었는데, 그들이 엘리에제르와 드보라의 친구가 되어줬다. (극단적이진 않지만) 종교적인 양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소통할 수 있을만큼의 히브리어를 했다. 이 넷은 서로 히브리어만 쓰기로 약속을 맺었다. 사상 최고의 비전을 가진 벤 예후다에게 “그 저녁은 조상들의 땅에서 히브리어가 일상 회화 언어로 부활하기 시작한 때”였다!

하지만 그가 알았어야 했던 게 있다. 하씨드계로 그를 고용한 도브 프룸킨은 반하씨드계에 속해 있어서 파인즈 가족을 미워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드보라는 다른 어떤 언어도 사용하는 게 절대 금지되어 있었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냈다. 그래서 엘리에제르가 써준 단어와 문장을 연습하며 지냈다. 그녀는 밤에 일이 끝나면 또 히브리어 수업을 해줄 남편을 기다리곤 했다.

1만 6천 명의 예루살렘 유대인 공동체는 “분리의 세대”였다. 작은 그룹들이 각각 자신들이 떠나온 땅의 언어를 해,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다양한 (유럽 출신의) 아쉬케나지 랍비들은 (이슬람 영토 출신의) 세파라디 유대인들을 최고로 업신여겼다. 그리고 각각의 공동체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썼다.

The old city of Jerusalem in 1890

1890년의 예루살렘 올드 시티

자기 학교에서 불어 사용을 고집한 로스차일드

에드먼드 로스차일드 남작은 이스라엘 건국 이전 최고의 자선가였다. 자신의 자선 단체 알리앙스 이스라엘리뜨 우니베르셀르를 통해 그는 야포 지역 정착민들을 위한 부동산을 매입해, 농부들에게 포도원과 프랑스 포도로 만든 양조장을 주었고 새로운 정착촌이 생길 때마다 학교를 지었다.

그러나 그에게 히브리어의 국어로서의 부활은 몽상이었다! 사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알리야한다는 발상 자체도 순전히 환상이었다. 그렇다. 이 프랑스 남작은 성지의 가난한 이들을 돕긴 해도 자신의 모든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제1언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히브리어는 순전히 죽은 언어라고 여겼던 것이다.

엘리에제르는 로스차일드의 알리앙스에 대한 전쟁을 촉구하는, 도발적인 글을 썼는데 거기서 그는 로스차일드를 이스라엘 땅에서의 국가 부활이라는 개념 자체에 맞서는 위험한 적으로 보았다. 그렇다. 알리앙스는 실용적인 것이었다. 로스차일드는 이 학생들이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기능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자 했다.

비전

그러나 벤 예후다의 비전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땅, 그리고 유대 민족의 언어의 부활이었다. 수년 후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민족들의 역사 가운데 현실주의자들이 제대로 주도하지 못하고 몽상가들이 있는데,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난공불락의 현실이라는 경계를 넘어 민족을 위해 더 나은 현실을 만들어줄 수 있다!

벤 예후다에겐 꿈과 열정이 있었다. 그게 그가 가진 전부였다.

다음 달에 연재.

출처: <예언의 성취 –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손자) 저, 2008년
<선지자들의 언어 –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의 생애> 로버트 세인트 존 저, 1952년https://goo.gl/MVmMUK
https://goo.gl/8r29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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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이스라엘에 대한 진실을 전하다

1018 - Ari blesses the church in Brazil

마나우스의 미니스테리우 인테르나시오날 다 헤스타우라소 헤니 테하 노바 사도/목사

브라질의 상파울루 국제 공항 입국장 문을 나가는데, 오랜 시간 신실하게 마오즈의 친구가 되어준 루이가 날 맞아줬다. 그는 학교의 국장이고 많은 일을 맡고 있지만, 마오즈의 사역을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고자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쓴다. 브라질 전역의 내 방문을 기다린 많은 공동체들이 표현해 준 흥분감을 루이에게서 듣는데, 아주 좋은 교제의 시간이었다.

이후 우리는 특별한 브라질 지부 대표인 엉데숭 바레뚜를 만나, 이번 방문의 목표들을 논했다. 그리고 엉데숭과 나는 살바두르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도시마다, 교회마다 방문해 보니 각 도시와 그룹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모두 이스라엘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을 갖고 이스라엘에서 사람이 와서 이스라엘 편에 서야 할 성경적 이유를 알려준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모임마다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드는지, 나는 감명을 받았다.

1018 - Brazil - Star of David

또 하나의 복된 사건은 두 번의 집회에서였다. 보고와 강의를 마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구원과 헌신을 위해 앞으로 나아왔다. 내가 그 목적을 위해서만 방문한 것이라고 해도 충분히 의미있었을 정도였다.

내가 말씀을 전한 두 교회에는 수만 명의 성도들이 있었다. 이스라엘을 포용하는 것이 그들에게 새로운 정보고, 새로워진 흥분감이라는 게 큰 격려가 되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마노시였다. 아마존 정글 한가운데에 위치한 인구 250만의 도시였다.

사도요 목사인 헤니 테하 노바는 가족으로 우리를 받아주며, 자신의 교회를 우리에게 열어주었다. 우리는 말씀을 가르치고, 성령의 은혜와 역사를 전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줄 수 있었다.

1018 - Ari with Anderson and Apostle Renee Terra Nova

왼쪽부터: 마오즈 브라질의 엉데숭 바레뚜 대표, 아리 소르코 람, 헤니 테하 노바 사도

 

반응은 아주 긍정적이었고 집회는 브라질 전역에 “생방송”으로 나갔다.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한번에 수십만 명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엉데숭과 나는 집으로 돌아갈 마지막 비행기를 기다리며 앉았다. 각자 자신의 집을 향해서. 브라질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마음을 열고 있고, 이스라엘과 브라질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진척시키기 위해 양국이 협력할 새로운 기회가 많아지기 시작했음이 분명해졌다.

Igreja Batista Siao, Pastor Ishmail, Bahai

이그레자 바치스타 시아오의 바하이 이쉬마유

Igeja Batista Caminho das Arvores, Salvador , Bishop Atila Brandao.

이그레자 바치스타 까미뉴 다자르보리스 살바두르의 아칠라 브랜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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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징조이스라엘 전국 25개 메시아닉 유대 공동체에서 온 60명의 아이들!

1018 - Music Making For Kids group pic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메시아닉 유대인 공동체의 아이들에게 놀라운 음악적 은사와 불굴의 용기를 주셨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한 음악 만들기’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는 우리 아이들이 이스라엘 전역의 교회에서 말 그대로 뿜어내고 있는 재능과 기술을 보여줄 거라고 꿈도 꾸지 못했다. 믿는 아이들의 새로운 세대 전체가 온갖 악기들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실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 자체가 가능한 것은 우리 마오즈 동역자들 덕분이다! 현재 어린이를 위한 음악 만들기에 등록되어 있는 아이들은 60명이다. 여러분에게 감사를 전한다!

총 비용: 38,500 달러.
확보: 13,000 달러.
필요: 25,500 달러.

 

야이르

1018 - Yair - Music Making For Kids

제 이름은 야이르에요. 전 11살인데 바이올린,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도 해요.

교회에서 저는 어린이 예배 팀을 인도하고, 청소년 예배 팀에도 소속되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합니다. 저희 어린이 예배 팀은 네 명으로 구성되어 있죠. 드럼, 베이스, 피아노와 보컬이에요. 저희 청소년 팀에는 일곱 명이 있습니다. 드럼, 베이스, 기타,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색소폰과 보컬이에요. 저희 누나는 노래를 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해요.

하나님께서 제게 이 은사를 주신 건 예배를 인도하고, 안 믿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끌게 되길 원하셔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찬양과 예배 소리를 들을 때, 성령께서 그들을 충만케 하여 믿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다윗 왕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싶어요. 제 또 다른 꿈은 비행사가 되는 거에요. 또 발명가도 되고 싶고요.

저는 이제 4년째 ‘어린이를 위한 음악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왔어요. 이 프로그램은 제가 공부하는 데에 도움이 돼요. 어른이 되면 저는 음악을 하나님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거에요.

엘리헨

1018 - Elichen - Music Making For Kids

제 이름은 엘리헨이고, 저는 14살이에요. 하이파에 살고 8년 동안 바이올린을 연주해 왔죠.

저는 오케스트라 음악 학교에서 연주하고, 저희 교회 청소년 예배 팀에서도 섬기며 때로는 대예배 예배 팀도 큰 누나 대신 섬깁니다.  또 10~15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이스라엘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도 연주해요. (이 연령 이후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됨)

나중에 저는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예배 팀에서 섬기고 싶어요. 제가 예배하고 돕고, 제 재능으로 기름 부음을 더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어요.

‘어린이를 위한 음악 만들기’ 리사이틀에서 공연을 할 때, 청중들은 저처럼 다 믿는 분들이에요. 그리고 각자가 음악을 배우고 있고 저와 같은 미래를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저는 예슈아를 믿으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힘이 되어 좋아요. 연주를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다른 이들이 있다는 것이요.

현재 제 음악은 제가 이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릴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에요. 이 은사에 계속해서 투자한다면, 저는 아직 주님께 말씀 드리지 못한 더 나은 방식으로 감사하며, 큰 감사의 제사를 올려 드릴 수 있게 될 거에요. 주님께서는 제게 모두가 받지 않는 무언가를 주셨어요. 저는 제 연주를 듣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기름 부으심을 전하기를 갈망해요. 그래서 주님께서 존재하시며 언제나 곁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요.

야이르와 엘리헨의 아버지

저희에겐 여섯 자녀가 있습니다. 대부분이 악기를 연주하고, 둘은 직업 뮤지션이 되었죠.

수년 전, 첫째 아들이 17살이었을 때 (지금은 22살), 저희 교회 예배 팀 리더가 이사를 가서 저희는 거의 팀이 없는 상태가 되었어요. 저희가 아들에게 물었죠. “라미, 도움을 좀 줄 수 있겠니? 다른 사람이 없구나.” 아들은 시도해 보겠다고 했어요.

저희는 아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았지만, 라미는 자신을 완전히 바쳤어요. 예배 팀에 이미 있던 다른 4~5명은 저희 아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죠. 하지만 저희는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보았고, 그들은 라미의 연주를 들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탁월한 팀이 되었죠.

지금 저희는 다음 세대가 자라가는 것을 봅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이제 예배 팀에 들어오는, 많은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있어요.

어린이들이 무언가를 너무나 잘 해서 장학금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면에 더 열심히 할 자극을 줄 거에요. ‘어린이를 위한 음악 만들기’ 프로그램 담당자가 찾아와 도와주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저희에겐 너무나 큰 축복이었죠! 저는 감사로 충만했어요. 축복에 축복, 축복, 또 축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네타

1018 - Neta with her mom

제 이름은 네타이고 저는 첼로를 연주하는 8살이에요.

제 꿈은 하나님을 믿고 가능한 한 많이 그분을 위해 연주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감정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예배 팀에 속하고 싶어요.

저는 하나님께서 이 재능을 주신 것이, 제가 연주할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시는 걸 듣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절대음감이에요. 그래서 노래를 듣고 코드나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를 할 수 있죠.

저는 음악이 예배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주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과 교제하는 모습을 보고 소리를 듣고 기뻐하실 수 있게 되잖아요.

‘어린이를 위한 음악 만들기’ 프로그램에 속한다면 저는 예슈아를 믿는 다른 어린이들을 만나 함께 연주하고 예배하는 걸 즐길 수 있을 거에요.

네타의 어머니

네타는 말을 아주 늦게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스스로 안에 많이 갇혀 있었죠. 그리고 그림과 색칠하기를 아주 좋아했어요. 집에서나 또 예배 중에도 그랬죠. 그림을 보면 전 아주 영적인 게 느껴졌어요. 아이가 성령을 체험하는 것 같았죠. 네타는 바람, 물의 흐름, 비 등을 그리곤 했어요. 지금 네타가 연주를 할 때도 마찬가지에요. 성령께서 내면에 보여주시는 것이 흘러나오는 연주 같죠.

네타가 예배 음악을 연주할 때, 저는 아이에게서 불꽃이 튀는 걸 봐요. 자기 자리를 찾은 것만 같죠.

1018 - Music Making for Kids program children

1018 - Music Making for Kids program chidlren

1018 - Music Making for Kids children with 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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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사랑하는 마오즈 동역자 분들께,

저희는 이 땅에 부흥이 임할 날을 위해 삽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무리가 희생 당하신 어린 양 예슈아를 영접하고, 이스라엘의 옛적부터 계신 이를 예배하고 그분께 기도하는 법을 배우겠죠.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희에게는 그 “갑자기”의 때에 이 믿을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어린이들이 주님을 예배하며 찬양하기를 갈망하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높이는 모습으로 그렇게 할 것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더욱이 이들은 유대인의 왕 예슈아께 영광 돌리기 위해 노래와 악기 연습을 하려고 매일 여러 시간씩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희는 7~18세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를 위한 음악 만들기’ 프로그램 등록 60명이라는 목표에 이르렀습니다!

이 어린이들은 신중한 심사를 거칩니다. 진지하게 음악을 공부할 자신들의 능력과 근면성을 증명하기 위해 최소 1년 동안 수업을 들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능력치에 따라 수업료의 40~70%를 보조 받습니다. 몇 명의 최고 뮤지션들은 수업료의 90%를 지원 받죠.

올해 저희는 ‘어린이를 위한 음악 만들기’에 38,500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껏 저희는 저희 가족의 동역자들로부터 13,000 달러를 받았습니다. 이들을 위해 아직 25,500 달러가 필요한 거죠.

이스라엘에서는 음악원이라는 곳에서 음악 공부를 합니다. 전국에 걸쳐 드는 비용은 크게 다르지 않죠. 어린이가 이 음악원에 등록을 하면, 마오즈는 매년 학비 보조를 결정해야만 합니다.

러시아 유대인들이 지난 20년간 대규모로 이민 오면서 이스라엘 뮤지션들의 수준은 분명 높아졌습니다. 사실 이 프로그램에 등록된 많은 어린이들이 구소련에서 온 믿는 가정 출신입니다.

이들에겐 음악의 문화가 있죠. 그리고 저희는 이 어린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으셨을 때 생각하셨던 존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재정을 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 어린이들의 은사와 재능이 예슈아의 영광을 위해 계발되어, 이스라엘 전국의 메시아닉 유대인 공동체를 축복할 수 있도록 이 어린이들에게 투자할 때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아리&쉬라 소르코 람

 

추신. 1인당 평균 비용은 매월 65 달러이니까 10개월이면 650 달러입니다. 저희는 이 재능 있는 어린 뮤지션들 중 한 명을 한 달, 혹은 한 학년도 동안 후원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하실 수 있는 만큼만 해주신다면 영원히 하나님께 기억될 것입니다.

*$25,000 = £19,420, €21,530, CAD32,695
*$65 = £47, €53, CAD84
*$650 = £470, €530, CAD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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