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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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8 2018-11-01T10:44:43+00:00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세계 최초의 “히브리어로 자란 아이" - 3부

1880년대 초, 최초 중 최초의 성지 개척자들은 빌루의 지도자들이었다. 왼쪽: 이스라엘 2대 대통령이 된 모셰 샤레트 (히브리어 성을 취함)를 아들로 둔 야아콥 셰르톡, 제에브 블라디미르 둡노프, 가운데: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는 유대 민족 가운데 태어난 이들 중 가장 비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급진적 비전의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꿈꾸며 독학한 천재적 사전 편찬자였고,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도록 영향을 미치고 남다르게 조직하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은 40여년 동안 매일 약 19시간씩 일한 아주 병이 심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이 한 사람을 사용하사 죽은 언어를 부활시켜 전세계에 흩어진 민족의 마른 뼈들을 모으는 데에 중대한 역할을 감당하게 하셨다.

폐렴으로 인해 6개월 정도 밖에 살 수 없었던 그와 약혼녀 드보라는 1881년에 유럽을 떠나 성지로 향했다. 예루살렘은 그가 호흡이 있는 한 자신의 사명을 성취하고자 계획했던 목적지였다. 선지자의 비전으로 그는 유대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히브리어가 한 나라의 국어가 될 수 없으리란 걸 알았다. 그리고 또한 유대 민족이 국어가 없으면 국가가 될 수 없으리란 것도 알았다.

그 못지 않게 놀라운 드보라란 사람은 남편이 비전을 성취할 수 있도록 생을 바쳤다. 그녀는 이스라엘 땅으로 가는 여정 중에 배운 히브리 단어 몇 개만 가지고 새로운 나라에 도착했다. 그녀가 받아들이고 남편과 동역한 그 위대한 사명이란 것은 세계 최초로 히브리어를 쓰는 가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엘리에제르는 가정에 대한 꿈이 있었다. 자신의 가정에 많은 아이들을 낳되 모두가 태어나면서부터 히브리어를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드보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지 몇 달이 되지도 않아 임신을 했다. 그녀가 맡은 첫 임무는 자신이 먼저 히브리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엘리에제르와 언약을 맺기를 그때부터 남편과 자신의 친구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과 오직 히브리어로만 말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어떤 언어로는 한 마디라도 허용되지 않았다.

책 없이 히브리어 공부하기

이제 현실이 되었다. 드보라는 매일 수시간씩 히브리어 공부를 스스로 했다. 교과서도 없었다. 히브리어 회화 상대가 되어줄 다른 친구도 없었다. 남편도 그녀에게 언어를 가르쳐주지 못했으며, 도브 프룸킨 씨의 작은 신문사 <백합> 의 대체 편집자로 일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온 밤에만 겨우 도와줬다.

가장 큰 도전이 된 것은 극도로 비참한 가난이었다. 종종 그들은 빵 한 덩이를 구울 밀가루가 충분치 않아 고생했다. 많은 경우에 빵 한 덩이가 식사의 전부였다.

도착하고 세 달쯤 지났을 때,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드렸다. 니씸 벸하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부호 에드몽 로트쉴드(로스차일드) 남작의 나눔으로 알리앙스 이스라엘리뜨 위니베르셀이 운영하는 프랑스 소년 학교의 교장이었다. 성지라도 자신의 학교에서는 히브리어를 가르치면 안 된다는 로스차일드 가의 주문에 철저히 반대되게, 니씸은 엘리에제르에게 자신의 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는 국가적 부흥이라는 엘리에제르의 비전과 뜻을 같이 하고, 민족, 땅, 언어의 관계를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벸하르는 엘리에제르에게 그 자리를 위한 예산을 받진 못했지만, 종교를 가르치는 두 교사의 급여에서 조금씩 떼어 엘리에제르에게 주려고 한다고 했다. 이번에도 비전의 사람 엘리에제르는 박봉을 받으며 일하게 되었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히브리어를 히브리어로” 가르치고자 하는 그의 강한 열정은 돈을 향한 갈망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히브리어 수업 첫 날부터 그는 매번 오로지 히브리어로만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의 수업은 극도의 성공을 거뒀으며 맨 처음 수업을 들은 학생들 일부는 장래 새로운 나라 이스라엘 국가 구성에 지도적 역할을 한다.

초정통파 유대교인들의 금지령

그러나 엘리에제르에겐 더 임박한 문제들이 있었다. 정통 유대교 이웃들이 이 “이단자”를 점점 더 극렬히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히브리어를 대중화하고 어린이들조차 히브리어로 말하게 하도록 가르치는 그의 노력을 자신들의 생활 방식인 유대교에 대한 공격으로 보았다. 그가 회당에 출석하면 아무도 근처에 오지 않았다. 그들 생각에 이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은 국가 수립을 메시아의 오심과 연결짓고 있었다. 그들은 알리앙스 학교에 대해 종교적 금지령을 내렸고, 아무도 그 문에 드나들지 못하게 했다.

한편 드보라는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히브리어를 배우는 매일의 씨름을 이어갔다. 그녀의 외로움은 끊이지 않았다. 몇몇 여인들이 그녀와 친구가 되려 했지만 히브리어를 할 줄 몰랐다. 엘리에제르는 드보라가 다른 언어를 써선 안 된다는 것에 있어 확고했다. 드보라의 씨름은 계속됐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부분이 그녀가 그토록 깊이 사랑한 사람이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경멸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비드 살만 레본틴은 1882년 야포 근처에 투르크 족으로부터 백만 평 가량의 땅을 사는 데에 성공했다. 이 대지에는 성지 최초의 유대 정착촌 리숀 레찌온이 지어졌다.

맨 처음 개척자 무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자, 엘리에제르가 조그마한 히브리어 신문에 쓴 기사가 불을 지폈다. 소문이 퍼졌고 1882년 유월절 전야 약 15명의 젊고 건장한 개척자들 (그 중 한 명은 여성이었다)이 러시아 및 주변 국가의 끔찍한 핍박 가운데 도착했다. 거리를 걸으며 그들은 벤 예후다의 집을 찾기 위해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온 신문”에서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하는 엘리에제르의 글을 읽었다. 그래서 온 것이었다! 그들은 빌루 (BILU)라는 이름으로 자칭했다. “야곱의 집이여, 가라 우리도 따라 가리라!”의 머릿글자를 딴 이름이었다. 대학에서 교육을 잘 받은 이들은 그 비전을 따르기로 했다. 그들은 간청했다. “엘리에제르 님, 우리는 어떤 일도 할 의향이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지도해 주시고 뭘 해야 할 지 말씀해 주세요!” 이 젊은이들 다수가 이미 러시아에서 어느 정도의 히브리어를 익혀 할 줄 알았다.

엘리에제르는 그보다 1년 앞서 이주해왔을 뿐이었지만, 그들이 나라의 다양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어떤 이들은 농업 학교에서 농사를 배우도록 보냈다. 그들은 정말 최초 중의 최초였으며 벤 예후다에겐 큰 위로이자 흥분이었다. 오늘날 모든 이스라엘 학생들은 빌루를 알고 있다.

투르크 제국이 유대인들의 추가 이민을 차단하다

즉시로 점점 더 많은 젊은 유대인들이 항구 도시 야포에 내리기 시작했다. 엘리에제르가 내다본 것처럼 아랍인들의 불평이 시작됐다. 몇 주가 되지 않아 투르크 제국은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이민할 수 없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사실 그들이 발표한 게 아브월 9일로, 유대 성전이 두 번 다 원수들에 의해 무너진 역사적 운명의 날이다.

성지 대다수를 차지하던 유대인들은 주변 지역의 아랍인들이 일자리를 구하려 이 땅으로 자유롭게 밀려들기 시작하니 감소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대인 이민자들이 정착하여 인프라를 짓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왔다.

여전히 유대인들은 성지로 몰래 들어오고 있었다. 주로 뇌물을 통해서였다. 유대 사업가인 다비드 잘만 레본틴은 실제로 야포에서 10여 km 떨어진 곳에 약 1백만 평의 땅을 사는 데에 성공했다. 그의 그룹은 빌루의 젊은이들에게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그들은 함께 이스라엘 땅 최초의 정착촌을 이루었다. 장막을 치고 그들은 그곳을 리숀 레찌온 (시온에 처음으로)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그룹은 말을 타고 예루살렘으로 급히 달려가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려, 이 위대한 사건을 축하할 수 있게 했다. 바로 그 밤, 또 하나의 “최초”가 현실이 되었다. 드보라가 1900년 만에 처음으로 “최초의 히브리어로 자라는 아이”를 낳은 것이었다. 그들은 아이를 벤 찌온 즉 시온의 아들이라 이름했다. 비전의 사람 엘리에제르는 이 두 사건이 하나님의 은총이 이 땅에 임한 막대한 표징이라고 보았다.

1906년부터 1913년 사이 리숀 레찌온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 1882년에 시작된 이 정착촌은 농업의 결과가 너무 나쁘고 수원이 희박하여 거의 무너질 뻔했다. 유대 자선가 제임스 로스차일드 남작이 농업 기술과 우물을 제공하여 살려줬다.

벤 찌온이 히브리어를 할 수 있기를 기다리며

시간이 흘러 “최초의 히브리어로 자라는 아이”가 멋지고 튼튼한 소년이 되었다. 그는 섬세한 보호를 받아 히브리어가 아닌 언어를 한 마디도 듣지 못하게 됐다. 대부분은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였다. 그는 기민하고 쾌활하며, 사교적인 세살배기로, 히브리어로만 그에게 이야기할 것을 수락한 부모님의 많은 친한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의 보살핌 받기를 좋아했다.

이 소년에게는 단 하나의 자그만 구름이 끼어 있었는데, 세 살이 되도록 단 한 마디도 말을 안 했다는 것이었다. 드보라는 자신의 가족들이 첫 돌을 맞기 전에 모두 말을 시작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엘리에제르가 말이 늦었는지 궁금했다. 아니면 그의 가족 중에 벙어리가 있었는지. 드보라가 걱정을 한 것은 아이가 말이 없는 것에 대해 친구들이 부부 탓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엘리에제르에게 히브리어는 사어라는 것을 상기시켜줬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마이클 파인즈는 엘리에제르에게 벤 찌온에게 러시아어처럼 살아있는 언어를 가르칠 것을 간청했다. 그때 파인즈는 히브리어는 크면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파인즈는 엘리에제르에게 히브리어 학습이 성인들에게, 그리고 학생들에게 특히 좋다고 설명했다. “자네가 알리앙스 수업에서 보여주지 않았나. 하지만 아기들에겐 아니야!”

아이의 정신 능력을 걱정하는 친구들

파인즈는 벤 예후다의 히브리어 사용 국가에 대한 비전이 좋은 것임에는 동의했다. 그리고 성지의 점점 더 많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포함해, 실제로 히브리어를 배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왜인지 예루살렘 시민들은 이 소년에게 알려진 언어를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렇지 않으면 멍청이가 될 것이라면서!

이제 아이는 거의 네 살이 되었는데 완전히 벙어리였다. 그러나 엘리에제르는 친구에게 소리쳤다. “그러면 아이가 멍청이가 되게 놔둬!” 이후 그는 드보라에게 말했다. “모르겠어? 우리 아이를 데리고 하고 있는 건 위대하고 고귀한 실험이야. 나는 우리의 성공을 확신해.

하지만 실패한다면 실패를 공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히브리어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배울 수 없는 죽은 언어라고 발표할게.

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가 말하고 생각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며, 그런 면에서 예루살렘이나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다른 모든 아이들보다 지적으로 뒤지지 않을 것을 아주 확신해. 곧, 아주 머지 않아 벤 찌온은 말을 시작할 것이고 아이의 말이 우리에겐 위안이 될 거야. 옛 선지자들의 말씀처럼!

그리고 드보라 당신은 티투스의 손에 예루살렘이 멸망했던 이래 최초로 히브리어로 아이를 키운 영웅적 어머니가 될 거야!”

1882년 7월 31일에 출생한 “최초의 히브리어를 쓰는 아이” 벤 찌온. 이후 그는 이름을 이타마르 벤 아비로 바꿨다.

러시아어로 노래하는 아내를 발견한 엘리에제르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에제르는 리숀 레찌온에 갔다가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좀 만나고 신문을 몇 부수 더 팔기 위해 돌아오는 길이었다. 파인즈 부인은 그냥 드보라를 방문했다가 “부모들의 죄 때문에 희생양이 된 아이들”에 대한 말을 했다. 그 말이 뇌리에 박혀 드보라는 아이를 붙들고 울었다. 드보라는 러시아에서 자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고, 무의식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아이에게 러시아어로 자장가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바로 그 순간에 엘리에제르가 집에 들어왔고 아내가 벤 찌온에게 러시아어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격노한 엘리에제르는 아내에게 소리쳤다. 혼란스러워 대답할 줄을 모르는 드보라는 자신이 러시아어로 노래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조용히 울었고, 어머니를 돕고자 오고 싶은 마음에 벤 찌온은 외쳤다. “아바, 아바, 로! (아빠, 아빠, 아니에요!)”

부모는 모두 아연했다. 그리고 기쁨의 함성이 터졌다! 아들이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히브리어였다! 이 가족에게 말을 하지 못하게 랍비들이 금지령을 내렸음에도 예루살렘 전역에서 사람들의 무리가 이 “기적의 아이”를 보기 위해 왔다. 전세계에서 오로지 히브리어만 할 수 있는 첫 아이였던 것이다!

벤 찌온이 만들어낸 히브리 단어들

그 때부터 벤 찌온은 조용히 있질 않았다. 온갖 질문이 가득해 묻고 다녔다. “이게 뭐에요? 저건 뭐죠?” 엘리에제르는 히브리어에 아직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언어의 논리를 본능적으로 간파한 벤 찌온은 곧 자신만의 단어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사실 남동생과 세 여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차례차례 벤 찌온이 그들을 가르쳤고 아버지가 매주 신문 칼럼에 싣는 새로운 단어 목록에 기꺼이 추가할 단어들을 자주 만들었다.

아이들의 성공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직접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정착촌 선구자들에게 대단한 본보기였다. 그들에겐 실용적 단어가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히브리어 개가 순교하다

어느 날, 벤 찌온은 버려진 개를 발견하고 아버지에게 “히브리어 개”라고 말했다. 벤 찌온은 아버지 어머니 말고 말을 걸 누군가가 있게 될 거라며 이 개가 정말 필요하다고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어느 날 다섯살배기와 그의 개는 편지 부치는 심부름을 하러 우체국에 갔다.

벤 찌온은 길을 잃고 초정통파 유대교 아이들 무리를 만나게 됐다. 그는 달리기 시작했고 개에게 “마히르!보! (빨리! 이리와!)”라고 소리쳤다. 유대교 아이들은 벤 찌온이 개를 자신들의 랍비 이름인 “메이르”로 부르는 줄 알았다. 그들은 개를 죽이고 무의식이 되도록 벤 찌온을 때렸다. 첫 번째 히브리어 개가 이스라엘 재탄생의 순교견이 된 것이다.

그리고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엘리에제르는 아이의 할례를 위해 돈을 빌려야 했다. 엘리에제르는 벤 찌온에겐 항상 히브리어가 첫 번째 언어가 될 것임에 마침내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에게 다른 아이들과 로트쉴드의 학교에 다니며 프랑스어와 터키어도 배우게 했다. 그것은 프랑스어로 애국적인 노래를 부를 때가지였다! 벤 예후다는 그 자리에서 홈스쿨링으로 전환했다.

투르크의 후프를 통과하며

첫 해에 <백합>이라는 작은 소식지의 부주필이긴 했지만, 엘리에제르는 자신만의 일간지 편집장이 되기를 갈망했다. “파리 일간지 <르피가로>처럼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분명 그건 시간이 걸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몸이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첫 장애물은 따분한 투르크의 관료 체계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벤 예후다에게 히브리어 신문을 창간할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잘 풀려서, 엘리에제르는 그보다 조금 앞서 허가 신청을 했지만 사용하지 않고 있는 세파르디 랍비를 만나게 됐다. 랍비는 엘리에제르에게 약 3천 원에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엘리에제르는 언론계의 기업가 답게 그에게 그 돈을 빌려줄 또 다른 친구를 찾았다! 엘리에제르가 예루살렘에서 진짜 신문을 창간할 수 있도록 문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에 새로 정착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소통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히브리어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벤 예후다가 신문의 단독 소유주이자 편집장이었기 때문에 가난의 끝에 다다르게 되었다. 정말 더러울 정도로. 가족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의 신문이 항상 지출의 1순위였다. 그는 수익을 내기 위해 아무나 구독자로 받아주지 않았다. 신문은 히브리어를 유대 민족 가운데 다시 살려내기 위한 그의 꿈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핍박 받는 유대인들, 특히 러시아 유대인들 사이에 조상들의 땅으로 이민하는 것에 대한 엄청난 관심을 일으켰다.

해법을 찾아내야만

그러나 충분한 영양 공급이 되지 않은 드보라는 병약해졌다. 기침을 하며 열이 나는 경우가 잦았다. 6년째에 드보라는 기침을 하다가 피를 토했다. 남편의 폐렴이 옮은 것이었다. 의사들은 리숀 레찌온의 더 따뜻한 기후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라고 했고, 드보라는 3개월 동안 그곳에서 지냈다. 드보라는 나아졌지만 그 다음엔 엘리에제르도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 드보라는 벤 예후다에게 러시아에 가서 이스라엘 이민에 관심 있는 이들을 만나고 신문 구독자 수를 늘려오라고 했다. 다행히 그와 (여전히) 좋은 관계에 있던 파인즈 씨는 벤 예후다가 다녀간 사이에 신문 편집 직책을 맡았다. 그러나 떠나기 전 엘리에제르는 말했다. “드보라, 내가 없는 동안 아이들에게 히브리어 외의 언어는 못 듣게 하라는 원칙을 지키겠다고 거룩한 모든 것을 걸고 약속해.” 드보라는 약속했다.

마오즈 이스라엘 리포트 2019년 1월호에 계속-

자료 출처:
<예언의 성취,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손자)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저 2008년
<선지자들의 혀,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의 생애> 로버트 세인트 존 저 1952년
https://goo.gl/MVmMUK
https://goo.gl/8r29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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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민족에게 소망을

파티마 (오른쪽)와 그녀의 멘토

이 이야기는 이슬람이 주류인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에 엄청난 어려움이 있음을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항상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일이다. 이 때문에 우리 마오즈에서는 서안 지구와 가자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말을 거의 않는다. 하지만 이 학대 받는 민족을 향한 여러분의 기도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 아랍 이웃들의 잃어버린 양떼를 위해서도 기도해주길 바란다. 아래 이야기는 우리 동역자 중 한 명이 쓴 것이다.

파티마는 21세의 학생으로 서안 지구 마을 한 곳에 산다. 파티마가 16살이었을 때 가족들은 나이 든 사람과 결혼하라고 강요했다. 그녀는 1년 후에 아들을 낳았다. 이슬람 가정들 가운데 흔히 그렇듯 파티마는 시댁에서 남편과 살았다. 남편은 무지막지하게 그녀를 학대했고, 파티마는 자주 친정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아버지는 항상 그녀를 남편 집으로 돌려보냈다.

한 번은 남편이 너무나 심하게 때려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다시는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으리라 마음 먹기에 이른 것이다. 결혼 후 1년 반만에 팔레스타인 법원은 파티마에게 이혼을 허락하며 양육권을 주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로 돌아가기로 결단했고 졸업도 했다. 그 다음엔 서안 지구의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친척들이 파티마 가족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파티마를 만나고는 맘에 들어 하며 자기 아들 알리와 결혼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는 당시 독일의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방학이 되어 알리는 서안 지구를 찾았고 파티마를 만났다. 이들은 서로 알게 되었고 무슬림 율법에 따라 공식 약혼도 했다. 알리는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독일로 돌아갔고,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약혼남이 파티마에게 예수를 메시아로 믿게 되었다면서 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메시아를 만난 간증을 하며, 그녀도 진리를 찾을 것을 권면했다. 파티마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슬람이 거짓 종교일 뿐 아니라 그 율법이 여성을 학대하고 박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파티마는 이 내용이 사실임을 알았고 스스로 그리스도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또 예수의 생애와 기독 신앙에 대해 자신이 발견한 것을 친한 친구와도 나눴다.

파티마의 베스트 프렌드는 인터넷 검색을 시작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알아가게 됐다. 그러나 파티마가 전도한 여동생은 가족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알고 파티마를 구타하며 누가 예수 이야기를 했냐고 말하라고 했다. 현재 아버지는 아직도 유학 중인 알리를 어렵게 만들 방법을 궁리 중이다.

내 아내는 파티마에게 연락을 취했고 하나님께서 그녀와 약혼남을 아버지로부터 지켜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녀는 마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이제 이렇게 고백한다. “결코 그분을 떠날 수 없어요. 그리스도는 제 삶의 유일한 소망이에요.”

내 아내는 파티마와 그녀의 친구를 매일 밤 제자 훈련하고 있다. 아내는 성경 구절 하나를 나누고 함께 기도한다. 파티마와 그녀의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전히 지키시고 특히 전남편이 아이를 빼앗지 못하도록 기도하자.

파티마는 물로 세례 받기를 간절히 원한다. 우리는 적절한 시점을 살피고 있다.

주: 실명이 아니다.

 

지난 여름 우리는 두 개의 마을에서 여름 캠프를 가졌다. 캠프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벅찬 일인데, 특히 재미와 모험 뿐 아니라 기독 신앙의 기초를 나눌 수 있게 해주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

1118 - Summer Camp for arab children

우리의 주목적은 다음 세대를 유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랑하도록 무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성경 이야기 등 믿음에 기초한 활동을 제공하고 기독교 음악을 가르치며, 여기에 독특하고 다양한 활동을 결합시켜 최대로 많은 참가자들이 모이도록 했다. 35개가 넘는 활동들이 캠프마다 제공되어, 1주일 내내 경험하며 즐거워하는 것들을 아이들은 발견했다.

총 6~10세 사이의 어린이 270명이 참여했다. 대부분은 무슬림 가정에서 왔고 일부 아이들은 장애가 있었다. 우리가 가르친 기독교 음악은 아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성경 이야기가 실제적으로 다가오게 했다. 한 캠프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창조에 대한 성경 이야기책을 집에 가져가도록 나눠줬다. 캠프로 인해 우리에겐 가정을 방문하고 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갈 수 있는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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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캐나다인들을 찾아가다!

왼쪽부터 방향으로: 힐리오, 아리, 앨버타주 에드먼튼의 리빙 워드 크리스천 센터 데이비드&알린 킨즐 목사 부부

그는 90대로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우리의 오랜 동역자 중 하나다. 그는 우리를 눈물로 맞아주며 앨버타의 추운 대초원에서 따뜻하게 환영해줬다. 그리고 캐나다 동부와 서부에서 가진 모임들은 신자들로 가득 했다.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밴쿠버, 에드먼튼, 토론토, 킹스턴을 다니며 우리는 이스라엘 편에 서서 기도하고 기꺼이 베푸는 많은 이들을 만나 정말 기뻤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행하고 계신 일에 동참하고 유대 민족의 심령에 영향력 있는 일을 하기로 결단한 신자들 말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지닌 진정한 아버지 아리와 함께 나는 캐나다 전역을 방문하며 메시아의 공동체들을 섬기는 특권을 누렸다. 모임마다 사람들은 이제 이스라엘과 캐나다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런 모임 가운데 우리는 밴쿠버의 중국인 신자들과 네 시간을 앉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리와 나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간증도 하며, 그들에게 시기나게 하고 예슈아께 인도함으로 유대 민족을 축복하고 주님을 사랑할 것을 격려했다.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

우리가 성경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에 설 때, 우리 눈이 열려 하나님께서 북으로부터 남까지, 동에서 서까지 열방 가운데, 특히 우리 각자의 나라에 행하고 계신 일이 온전히 아름답고 다양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캐나다의 공식명인 캐나다 자치령 (Dominion)은 하나님의 지배 (dominion) 하에 시편 72:8을 따라 세워진 나라다.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have dominion)” 즉 주님을 따를 나라인 것이다.

 

벽난로 곁에서 오랜 마오즈의 동역자와 함께

온타리오주 쏜힐의 시티 오브 데이비드 메시아닉 회당에서 아리 오른쪽은 제프 포어맨 랍비,

아리와 여행을 다니는 시간 동안 나는 스티븐 하퍼 전 총리가 2014년 1월에 크네셑에서 한 발언에 대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물과 불을 지날 때에 캐나다는 이스라엘 편에 서겠습니다.” 유창한 수사를 훨씬 초월하는 그의 말은 열방을 축복하도록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리더의 언약이었다.

우리 마오즈 이스라엘이 마음에 품은 갈망이자 헌신은 캐나다 전역의 신자들이 이스라엘 편에 서며 이스라엘에서 복음이 선포되도록 결단력 있게 투자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처음 우리에게, 그리고 열방에 전해준 이들 즉 유대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것보다 위대한 선물은 없다.

그러므로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물과 불을 지날 때에” 이스라엘 편에 서게 되기를 촉구한다.

브리티쉬콜럼비아주 서리의 크라이트스 워십 센터

앨버타주 에드먼튼의 리빙 워드 크리스천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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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즈 동역자들이 축복한 탁월한 음악 가족

1018 - Elichen - Music Making For Kids

1118 - Leon and Nina Mazin with daughter Elichen and son Yair

Leon and Nina with daughter Elichen and son Yair

 

마오즈 이스라엘의 친구 분들에게 샬롬을 전합니다.

저희 식구 모두는 아이들의 음악 교육을 후원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덕분에 저희 아이들은 최고의 음악 선생님들과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의 음악적 재능이 나날이 발전해 가는 것을 봅니다.

또한 엘리헨 (14세 딸)과 야이르 (10세 아들)가 예배 및 기타 음악 프로젝트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엘리헨이 이스라엘의 작은 그룹과 함께 이탈리아의 베로나 시에서 열리는 국제 음악 대회에 이스라엘 대표로 나가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의 후원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마오즈 동역자 분들의 삶의 모든 영역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하이파 목회자
레온&니나 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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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민족이 그 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 성경 출판 사역

유대 민족이 히브리어 성경 원문을 하나님께서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주신 그대로 보존해 왔다는 사실의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는 3,500년간 유대 민족 정체성을 붙드는 근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받은” 거룩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대로의 원문을 갖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이 여전히 그대로라는 사실을 볼 때, 예슈아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선포하신 것은 강력한 영향력을 갖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민족은 흩어져 1900년간 히브리어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 이스라엘인들이 갖는 문제가 있습니다. 고대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또 다른 사실은 이것입니다. 히브리 성경 본문이 총 8천 개의 단어로 되어 있다는 거죠. 현대 히브리어는 약 12만 개의 단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분명 고대와 현대 히브리어는 모든 면에서 같지 않습니다. 허나 구약의 히브리어 원문이 갖는 유산이 유대 민족의 정체성에 너무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히브리어 성경을 현대 히브리어로 번역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성경 시대에 8천 개의 단어는 당시 이스라엘에 사는 아이들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표현하기에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단어에 당시 문화에 따라 다중 의미가 생긴 거죠. 수천년 전 성경 시대에 이해되었던 것이 약 100년 전까지 흩어져 히브리어를 쓰지 않았던 유대 민족의 흩어짐으로 상실되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언어가 갖는 풍성함과 아름다움이 많은 성경 단어의 다중적 의미에 감춰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아 단어가 성경에서 어떤 목적으로 쓰였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생사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민들이 당신의 말씀을 이해하길 원하심에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날은 이스라엘에 히브리어를 쓰는 메시아닉 유대인 세 번째 내지 네 번째 세대가 있습니다. 놀랍게 헌신된 젊은이들, 메시아의 메시지를 담대하게 전하기로 결단한 이들이죠. 사역을 하든 음악을 하든, 일터에 있든 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흡수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이 신자들에게 성경을 읽는 것은 절대적 난제입니다. 여러모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일반 이스라엘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성경적 학문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속 유대인 혹은 전통적 유대인이라도 성경을 이해하고자 하면 엄청난 산에 가로막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재앙으로 여기십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 4:6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성경을 읽고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저희는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고자 하는 수많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성경을 소개할 놀라운 방법을 찾아냈다고 믿습니다.

저희는 이스라엘인들을 위해 <연대기 성경>의 번역이라는 3년짜리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구약의 히브리어 텍스트는 원문 그대로 유지될 것입니다. 그러나 연대기 성경이 제시하는 도구는 어려운 본문의 의미에 놀라운 조명을 해줄 것입니다.

각 섹션의 처음에는 사건 혹은 개념별 소개글이 아름답게 쓰여 있어, 본문을 읽기 전에 기본적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둘째로 각 문단 혹은 절에는 ‘천사가 발람을 꾸짖다,’ ‘가도록 허락 받은 발람,’ ‘발람이 발락을 만나다’와 같이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저희가 번역하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일반 이스라엘 성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단어에 대한 설명이 각 페이지 하단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명하게 만드는 일을 마무리짓기 위해, 이 번역판은 (최고의 학자들의 의견을 빌어) 성경 전체를 연대기 순으로 배열합니다. 독자들은 어느 선지자가 이스라엘 혹은 유다 백성들에게 경고 내지 격려를 한 건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당시 나라의 상황이 어떠했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는지 반역을 하고 있었는지도요.

이야기는 신약을 관통하여 매끄럽게 읽힙니다. 4복음서도 함께 조화를 이루고, 바울이 쓴 책들도 여정과 맞아떨어집니다.

이러한 도구가 있기에 이 성경은 오래 전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예언적 시간대를 아는 데에 도움을 주고, 오늘날의 사건들에 대한 통찰을 줄 것입니다! 이 성경은 이스라엘의 젊은 세대가 열방의 빛이 되는 자신들의 사명으로 무장되는 데에 유익할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은사가 있는 이스라엘의 설교자와 교사들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이들이 그 말씀에 합당한 깊이와 풍성함으로 복음서를 전하고 있죠!

성경은 약 2천 페이지로 구성될 것입니다. 30만원을 헌금해 주실 때마다, <연대기 성경> 히브리어판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주시는 것이죠!

<연대기 성경> 히브리어판은 빅터 칼리셔 회장이 이끄는 이스라엘 성서공회와의 공동 프로젝트입니다. 저희 팀에는 최고의 성경학자이자 성경적 유대 역사 전문가인 레이 프리츠 박사, 이스라엘 역사 전문가인 야이르 프랭크와 더불어 원문과 주석에 통달한 기술적 스태프진이 함께 있습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번역 전문가인 오르나 그린만이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닉 회사인 하게펜 출판사에서 낸 아름다운 어린이 그림 성경의 현대 히브리어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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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사랑하는 마오즈 동역자 분들께

저희가 살면서 가장 기뻐하는 일 중 하나는 연대기 성경의 히브리어판 출간을 위해 작업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은 고대 성경의 히브리어를 이해하고 싶지만 못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굉장한 돌파가 될 것입니다.

많은 성경 단어들의 의미가 시대를 지나면서 상실되었기에, 일반 이스라엘인들은 히브리 성경 상당 부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겨우 지난 100년여에 걸쳐 유대 민족이 다시 히브리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여러분이 “최초의 히브리어를 쓰는 아이” 이야기에서 보신 그대로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인들이 성경을 직접 읽고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막대한 일이 남아있습니다.

약 2천 페이지 분량의 연대기 성경은 일반 이스라엘인들로 하여금 신구약을 명확히 이해하도록 함으로, 이 엄청난 필요를 채워줄 것입니다.

본디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의 현대 히브리어판이 있긴 하지만, 연대기 성경은 4복음서의 시간 순서를 맞추고 신약의 여러 책들을 연대기 순으로 삽입하며, 배경 설명을 추가함으로 엄청나게 풍부한 이해를 더해줄 것입니다.

최근의 제작팀 미팅에서 저희는 이 성경 작업을 하고 있는 직원들의 흥분감을 느꼈습니다! 분명 이스라엘인들로 하여금 메시아에 관한 성구들을 성경 전체에서 보며,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흩어지게 하신 이유를 이해하고 죄의 삯을 깨달으며 이스라엘을 구속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경이로운 약속들을 알게 되는 문일 열릴 것입니다. 현재 정확히 432페이지가 남았는데 페이지당 30만원 가량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한 페이지 이상을 후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여러분이 후원해주신 페이지는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영원한 빛으로 임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아리&쉬라 소르코 람

 

추신. 유대 민족에게 성경 한 페이지를 전해주는 것보다 더 영속적인 투자가 있을까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 페이지 말입니다. 그들에게 영원한 변화를 안겨줄 한 페이지! 오늘 30만원의 후원으로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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